비오는 저녁 시장통에 있는 한 삼겹살 집에서 젊은 벤처기업 사장을 만났다. 자리에 앉아 종업원이 막 소주와 삼겹살을 내오던 찰나에 폴더마저 떨어져 나간 사장의 낡은 휴대폰이 울렸다. 그리고 사장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번 건은 창업 이후 처음으로 제 직권으로 정한 겁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삼겹살을 불판 위에 얹으며 통화내용을 넌지시 묻자 젊은 사장은 연거푸 소주를 두 잔 들이키고선 이런 얘기를 했다.
최근 사장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중년의 임원 한 사람을 스카우트했다. 그런데 이 임원은 해외출장이 있을 때면 항상 대기업에서 해 온 방식대로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예약했다. 사장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이코노미석에 탈 것을 요구했지만 임원은 사규를 들이대며 비즈니스석을 주장했다. 결국 사장은 이날 자신의 직권으로 해외 출장은 이코노미석을 타게끔 사규를 바꿔버린 것이다.
사실 이 회사는 비행기 좌석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질 정도로 재정상태가 열악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업 이후 비용을 아껴가며 회사를 운영해 오던 젊은 사장에게 임원의 주장은 이해하기 힘든 기성세대의 벽이었다. 앞으로 더 아끼고 노력해 회사를 키워야 하고 젊은 직원 대부분도 이러한 분위기에 땀 흘리고 있는 회사에 비즈니스석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젊은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런 돈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기성세대들의 고정관념에 넌더리가 난다고 한다. 자신의 회사에는 고졸 출신의 유능한 영업사원이 있고 지방대학 출신 직원도 많다고 했다. 사장은 학벌에 관계없이 유능한 사람을 적극 영입했고 승진도 빨리 시켰다. 당연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으나 이를 트집잡는 기성세대가 있어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주를 세병째 비우는 동안 젊은 사장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여전히 버려야 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업계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식당을 나설 때도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직접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 그 젊은 사장에게 자신의 회사만이라도 생각하는 대로 끝까지 이끌어주기를 부탁했다. 비가 온 뒤 땅은 더욱 굳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부·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