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T LCD를 구성하는 핵심 소재 및 부품의 국산 대체가 속도를 내고 있다. 국산 부품·소재 채용을 통한 대외경쟁력 확보를 노리는 패널업계와 세계적인 위치에 오른 국내 TFT LCD업체를 통해 부와 명예를 안으려는 관련기업들의 의도가 맞아떨어져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핵심 부품 및 소재 국산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국내 LCD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부품 국산화가 이루어지면 기존 외국 경쟁업체들이 공급가격을 인하, 원가가 줄어들게 되고 보다 안정적인 부품·소재 수급이 가능해져 납기단축 등 여러 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부품 및 소재류의 잇따른 국산화는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TFT LCD 초강국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는 사실 그동안 TFT LCD의 시장지배력이나 생산능력, 양산기술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았지만 핵심 부품·소재류의 수입비중이 높아 그 위상이 평가절하돼 왔다.
◇배경=올들어 LCD 부품·소재 국산 대체가 더욱 속도를 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LG필립스LCD·삼성전자·하이디스로 대별되는 국내 LCD ‘빅3’의 현재 세계 시장점유율은 40%를 넘는다. 올들어선 잇따라 5세대 라인을 가동, 일본·대만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출하량도 중대형(10.4인치) 제품만 월 100만개 전후에 달할 정도다.
이에 따라 LG나 삼성 두곳 중 하나만 거래처로 확보해도 부품·소재기업들로선 막대한 매출창출이 가능하다. 여기에 그 분야에서만큼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는 ‘덤’까지 얻게 된다. 과거에 D램 관련 부품·소재·장비업체들이 삼성이나 하이닉스와의 거래를 틈으로써 일약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LCD 소재·부품류에 대한 ‘무기화’ 전략도 국산 대체를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브라운관(CRT)에 이어 LCD 분야에서도 한국에 밀린 일본은 현재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CCFL·형광체·컬러필터·편광필름·아크릴판·제조장비 등 LCD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무기로 한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LCD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비록 LCD 시장에선 2위국으로 전락했지만 핵심 부품·소재분야에선 여전히 초강대국이어서 일본이 이를 무기로 압박한다면 한국업체로선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일본은 기술이전국인 대만을 한국보다 우선시하고 있어 국내 LCD업체들이 핵심 부품·소재 국산화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황=패널업체들의 국산화 의도와 관련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노력에 힘입어 LCD 소재·부품류의 국산 대체는 이제 상당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미 일반 범용성 부품의 경우 완전 국산화가 이루어진 상태이며 그동안 주로 수입에 의존해온 핵심 부품의 국산화도 최근 급진전되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CCFL다. LCD의 발광모듈인 백라이트유닛(BLU)의 핵심 부품인 CCFL은 일본의 독무대였으나 금호전기가 삼성 공급에 성공하며 국산화의 물꼬를 텄다. 금호는 올들어 공격적인 설비증설과 함께 공급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ETI 등 후발업체들도 OA기기용에 이어 LCD용 공급을 모색하고 있어 국산 CCFL의 비중은 큰 폭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편광필름 역시 LG필립스에 대량 공급중인 LG화학을 비롯해 신화오플라, 에이스디지텍 등 후발업체들이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승인을 추진, 내년부터 국산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컬러필터 등 상당수 핵심 부품이 ‘메이드인코리아’로 바뀌고 있다. 특히 구동칩(LDI) 등 일부 핵심부품은 국산이 외산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산화의 숙제로 남아있는 것은 핵심 소재인 액정. 백라이트 빛의 양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액정은 응답속도, 휘도 등 LCD품질을 좌우하는 소재로 현재 독일 머크로부터 거의 전량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학계와 연구계를 중심으로 액정 및 관련장비 국산화가 급진전되며 액정 자급 자족 시대의 기대를 낳게 하고 있다.
◇과제=LCD산업은 현재 D램의 뒤를 이어 ‘포스트 반도체’ 시대의 국가 기간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핵심 소재 및 부품의 국산화는 범정부 차원의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기부가 최근 21세기 프런티어사업과제 중 하나로 ‘정보디스플레이’를 선정, 전략적으로 관련 소재·부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핵심 부품 및 소재의 가장 기초 원자재 부분으로 넘어가면 국산화의 길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소재의 국산화없이 부품경쟁력이 없듯이 가장 기초적인 원자재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소재의 국산화는 의미가 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국산화가 활발한 CCFL의 경우 형광체 등 주요 원자재는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부품을 국산화해도 ‘로 머티리얼(원자재)’을 수입한다면 국산 대체효과는 줄어들게 마련”이라며 “기초 원자재의 상용화는 기술도 문제지만 우리나라가 경제규모가 작아 시장성 확보가 어려운 것이 더 큰 문제인 만큼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