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IT문화를 만들자>(29)IT갑옷 中企에 더 맵시난다

 흔히 경영의 3대 요소로 사람, 자금, 정보를 꼽는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모두 이 3가지 요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로 고민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자금 조달 문제로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자원이 부족하다보니 IT화에는 신경을 덜 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람, 자금, 정보가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그룹웨어, 전사적자원관리(ERP), 인트라넷 등 IT솔루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IT화야 말로 인건비와 재고를 줄이고 문서공유, 정보 공유로 비즈니스의 효율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난 1∼2년 사이 이미 적절한 IT 솔루션을 도입해 이익을 꾀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다.

 ▲ 언제 어디서나 클릭클릭

 서버 판매업체 아프로시스템즈 김근범 사장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분서주해야 하는 몸이다. 아프로시스템즈를 비롯해 미국에 위치한 모기업 아프로인터내셔널 등 3개 기업 사장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외 출장도 잦다. 결재를 맡으려고 사장을 찾다거나 언젠가 결재하겠지 하고 책상 머리맡에 서류를 두고 가는 일은 금물. 두세 시간은 고사하고 사흘이 걸려도 해결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사내에 구축된 인트라넷을 사용하면 그것만큼 실속있는 게 없다. 김 사장은 인트라넷으로 올라오는 각종 품의서나 계약서 등을 언제 어디서나 검토하고 그 자리에서 전자결재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장비개발업체 한아시스템즈 김명호 대리도 특히 외국에 가면 사내 인트라넷의 위력을 깨닫는다. 외국에서 처리한 일들을 곧바로 업무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단 외국에서 성사된 일을 국내에서 반영하려면 팩스를 기다리고 옛날 서류를 뒤지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트라넷이 구축된 후에는 외국 호텔도 회사 사무실이 된다.

 PS 중계기 납품업체인 네오텔레콤의 경우 사무실은 서울에, 공장은 성남에 있다. 이 회사 유승철 과정은 회사에 구축된 ERP로 공장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물품 수급상황을 파악하고 제때 물품을 발주할 수 있다. 때문에 쓸데없는 종이서류가 사라져 가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 김부장을 찾지 않는다.

 “김 부장, 이번달 재고가 어떻게 돼?” “김 부장, 제품별로 출고가 좀 뽑아와.”

 IT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회사의 사장이 상반기 매출 추이를 한번 보려고 하면 30분은 넉넉히 걸린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각종 데이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 않은데다 해당 문서를 직접 관리하는 사람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사장은 상무 찾고, 상무는 부장 찾고 부장은 대리를 찾는 식이다. 정작 데이터를 찾아 보고할 때쯤 되면 사장은 이미 외부 손님과 미팅이 끝난 상태. 스피드 시대에 재빨리 적절한 자료를 보고 분석할 수 있는 것만큼 경쟁력이 되는 것도 없다.

 TV 주요 부품을 납품하는 삼진의 김효섭 이사도 회사에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을 도입하고 좋은 점 중 하나로 “회사 경영과 관련된 주요 데이터를 여러 사람 고생시킬 필요없이 제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회사가 돌아가는 형편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공업용 스팀 다리미를 만드는 은성전기 김성은 차장도 “ERP 시스템을 도입한 후에는 사장님이 각종 보고서는 물론 주간 판매 계획서도 직접 출력한다”고 말했다.

 ▲ 핑계가 안통한다

 삼진 김효섭 이사는 몇년 전 중국 공장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물품 사양에 관한 자료를 팩스로 보냈는데도 엉뚱한 물건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자초지정을 물으니 중국 공장에서는 “팩스를 못받았다”고만 답할 뿐이었다.

 김 이사는 “이제는 회사 IT화로 중요한 자료를 항상 서버에 업데이트해 놓기 때문에 중국공장 사례와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됐다”면서 “IT화는 일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분명하게 해준다”고 지적했다.

 가성소다와 P.A.C 생산전문업체인 동해화학 정홍기 이사도 “이전에 계산서 발행이나 재고관리를 수작업으로 할 때는 장부상 수치 누락 사고가 잦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도 오래 걸렸으나 ERP 도입 후에는 어디서 문제가 발생됐는지 원인을 찾기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의 중간관리자도 “회사에 IT를 도입한 후에는 업무를 문서로 정리하기 때문에 일 하지 않는 사람은 웹상으로 바로 표시가 나게 돼 있다”고 귀띔했다.

 ▲ 마인드 부족으로 IT 문화 갈등도 있어

 중소기업에서 제대로 된 IT화를 시작한 것은 근 1년 사이다. 수십년간 종이문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전자전표를 매번 입력하고 자재관리, 매출액관리, 일정관리를 기준에 맞춰 업데이트하는 것이 귀찮다. “경리가 해야 될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나” “자재단가란 자주 바뀌게 마련인데 매번 등록하고 결재하려니 힘들다”는 불만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도입한 지 6개월이 채 못되는 회사의 경우 사원들의 IT마인드 부족으로 IT문화가 제대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이러한 전산 시스템을 꾸준히 관리하고 교육할 별도의 인력이 없어 갈등은 더욱 커진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사원들에게 IT마인드를 심어주는 데는 아직 시일이 더 필요하다고 고백한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중기 IT화 성공비결은

 1.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IT화 해야 한다.

 소프트파워의 우광식 이사는 “대기업 ERP와 중소기업 ERP는 모듈수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즉, 대기업의 경우 대리점·면세점·할인점·양판점·해외 수출 등 판매방식이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모듈수가 많아지는 반면 중소기업은 대개 대기업 한두 곳에만 판매하기 때문에 모듈수가 적다. 따라서 우 이사는 “대기업 ERP를 중소기업에서 사용하면 필요없는 기능이 너무 많아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해 중소기업 나름대로의 IT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작은 예이기는 하지만 한 중소기업체는 메신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국제 통화비용을 크게 줄였다.

 2. IT화는 사장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이미 IT화를 실시한 중소기업들의 고민처럼 IT문화가 진정한 기업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사원들간 갈등과 불만이 불가피하다. 때로는 더 불편한 것 같아 IT화를 중도에 포기하는 기업도 있다. IT화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바로 최고경영자의 마인드와 추진력이다. 한 최고경영자는 “중소기업은 IT화를 추진할 별도의 인력이 없으므로 사장이 직접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며 “적지 않은 출혈을 동반한 개혁이 없이는 제대로 된 IT화도 없다”고 말했다.

 3.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지원책을 눈여겨 보라.

 자금이 없는 회사의 경영자는 IT화 투자에 소홀하기 쉽다. 그렇다고 정보공유나 시장파악이 잘안되는 비IT체제로 간다면 회사는 계속 대기업 하청만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버추얼텍 서지현 사장은 “이럴 경우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중소기업청 등 정부의 지원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한다. 의외로 적은 비용으로 기업 IT화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중기 IT화 실패원인은

 브레인워크스 그룹 최고경영자 곤도 노보루가 지적하는 ‘이런 중소기업 IT화에 실패한다’

 1. IT화 담당자에게 전적으로 맡겨놓은 회사

 2. IT화 담당자가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는 회사

 3. 지나친 투자를 하는 회사

 4.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회사

 5. IT화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회사

 6. IT솔루션 제공업체를 비교선택하지 않는 회사

 7. IT의 유행성만 추구하는 회사

 8. IT기기가 사용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회사

 9. IT기기를 자사에 맞게 고치지 않는 회사

 10. 업무가 사람 본위로 흐르는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