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성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미 스캔소프트의 국내진출로 지난 99년 국내 음성기술 붐을 조성하고 홀연히 사라진 다국적 음성기술업체 L&H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L&H를 인수한 미 스캔소프트는 최근 국내시장 공략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과거 L&H와 관계를 맺은 업체들의 제품판매에 제동을 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동안 L&H 제품을 판매해왔던 국내업체들은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스캔소프트와 국내 음성업체들과의 정면대결이 펼쳐질 경우 그 결과에 따라 국내 음성업계 전체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양측의 움직임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황=당시 국내에 진출한 L&H는 L&H코리아를 설립하고 ‘Pre Payment(선지급)’ 형식으로 국내 음성업체들에 자사의 음성엔진에 대한 판매권을 팔았다. 즉 선지급금을 먼저 L&H에 지불하면 10배에 해당하는 제품을 팔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그러나 L&H코리아는 지난해 5월 지급불능과 부채초과를 이유로 문을 닫았으며 L&H에 선지급금을 지불한 업체들은 지금까지도 계약금액에 해당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L&H코리아와 관계를 가진 크고 작은 국내 음성업체들은 수십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L&H를 인수하고 시스윌과 함께 국내에 진출한 스캔소프트는 과거 L&H코리아와 라이선스를 맺고 아직까지 제품을 유통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정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스캔소프트와 시스윌=스캔소프트는 옛 L&H의 자산과 지적재산권을 모두 인수한 만큼 현재 국내에서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업체로는 시스윌이 유일하다는 주장이다. 또 기존 L&H코리아의 관련 제품을 유통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스캔소프트의 법률팀은 국내 일부 음성업체들의 L&H 제품 유통과 관련한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법률적인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시스윌은 기본적으로 스캔소프트의 입장과 같지만 국내 음성관련 업체와 부담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L&H 취급업체들의 반응=L&H제품에 대한 유통은 L&H와의 계약에 의한 것이고 아직 선지급금에 대한 물량을 다 팔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L&H 제품에 대한 판매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L&H코리아에 선지급금을 준 음성업체 관계자는 “스캔소프트가 L&H의 모든 것을 인수했다면 L&H코리아에 선지급금을 준 업체에 대한 책임도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스캔소프트가 미판매분에 대한 선지급금을 돌려주든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 주든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변호사를 통해 이와 관련된 법률적 대응준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결방안=업계는 스캔소프트가 기존 업체들의 계약분에 대한 판매는 일단 허용하고 업그레이드된 제품이나 스캔소프트와 새로 계약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에 L&H 제품과 스캔소프트의 제품을 차별화하고 또 음성업체들을 자연스럽게 스캔소프트와 재계약하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스캔소프트측에서는 이같은 방안에 대해 추가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갑작스럽게 음성업계에 불어닥친 L&H의 충격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