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발견한 후부터 충돌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37초라면 배의 속도를 감안했을 때 400m 거리에서 빙산을 발견한 것이 된다. 그 짧은 거리와 시간 동안 조타실에서는 배의 키를 급하게 왼편으로 꺾었다. 22.5도. 타이타닉호의 방향을 약 22.5도 좌측으로 바꾸었지만, 그것은 빙산과 배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을 만한 각도일 뿐이었다.
취침중이던 선장을 대신해 1등항해사는 위험을 직감하고 기관실을 향해 ‘우선 정지’와 ‘전속력 후진’을 명령했다. 이어 그는 빠른 동작으로 긴급 벨 버튼을 눌렀다. 10초 동안 울려진 그 벨소리는 배에 설치된 모든 방수 칸막이의 문을 닫겠다는 신호였다. 1등항해사는 경보신호를 보낸 후 곧 방수칸막이의 문을 자동으로 닫는 스위치를 가동시켰다.
그 때 타이타닉호는 이미 우현 앞부분이 빙산과 부딪치기 시작했다. 빙산의 물밑 돌출부가 용골 위쪽 약 3m 높이로 수면 아래 선체 측면의 강철을 깨뜨리며 스쳤다. 배와 빙산이 접촉된 시간은 길어야 10초 정도 였지만, 타이타닉호는 약 90미터 길이로 10㎝ 넓이의 상처를 입었다. 장소는 뉴펀들랜드섬 난바다의 그랜드뱅크스 남쪽, 북위 41도 46분, 서경 50도 14분이었다.
정면충돌이 아니라 측면으로 비껴서 부딪혔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들은 배가 빙산과 충돌한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부딪히는 순간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빙산은 우현 앞부분, 수면에서 약 7m 아래의 배 밑바닥에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타이타닉호는 15개의 방수격벽을 설치, 배를 16개소의 방수구획으로 나눠 설계됐다. 이들 구획 중 어느 2개가 파괴되어 물이 배에 유입된다 해도 배는 가라앉지 않게 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배의 앞부분은 4구획까지 침수된다 하더라도 침몰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빙산에 의한 균열은 타이타닉호 방수격벽의 6구획 이상을 깨뜨려, 자동차단장치가 가동되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긴급보고를 받고 잠자리에서 깬 스미스 선장은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난신호를 발사하도록 통신실에 지시했다. 이어 배의 위치가 산출되자 선장은 위치를 적은 종이쪽지를 손수 들고 무선통신실로 들어서서 조난신호를 반복해서 내보내라고 명령했다.
당시 조난신호는 그동안 줄곧 사용하던 ‘CQD’라는 신호와 함께 190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1회 국제무선전신회의 때 채택된 ‘SOS’ 신호가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타이타닉호의 통신실에서 발신된 구조요청도 ‘CQD(Come Quickly, Danger)’ 신호와 ‘SOS(Save Our Soul)’ 신호가 번갈아가며 발신되었다.
‘CQ’는 마르코니 부호로 ‘모든 기지국’을 뜻하고, 덧붙여진 ‘D’는 모든 기지국에 보내는 비상신호를 나타내는 뜻도 있었다. ‘CQD’가 조난신호로 계속 사용되지 못한 것은 기상상태와 전파의 송수신상태가 나빠 잡음이나 혼신이 있을 경우 조난구조신호로 확인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SOS’ 신호는 모스 부호로 세번 짧게, 세번 길게, 세번 짧게 보내는 신호로, ‘CQD’ 신호보다 기억하기가 쉽고 전송과 해독이 쉬웠다.
‘SOS’ 신호는 ‘··· ― ― ― ···’ 형태의 발신신호다. 여기에 위치정보와 상황정보가 따라붙는다. 각 무선통신국에서는 이 신호를 수신하면 모든 무선통신에 우선해서 구조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신호를 청취한 부근의 선박은 긴급히 구조를 위해 사고현장으로 향해야 한다는 선원법상의 의무가 있었다.
호가 간결하고 판별하기 쉬운 ‘SOS’ 신호는 195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전기통신조약 부속 무선규칙에 의해 세계 공통의 조난신호로 규정되었으며, 최근에 와서는 무선전신의 경우만이 아니고 비행기와 선박, 일반적인 위험신호로도 사용되고 있다.
아무튼, 당시 이미 유선에 의한 전신은 실용단계에 있었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해저전선도 1866년에 완성되어 영국과 미국이 전신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바다를 오가는 선박과의 통신은 무선통신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타이타닉호에서 발신된 구조 무선신호는 이후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승객들을 구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기적을 이룬 무선통신으로 각광을 받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빙산 충돌 위험에 대한 경고 메시지까지 방치시키며 승객들의 통신에 매달려있던 타아타닉호가 분주하게 통신을 수행했던 뉴펀들랜드의 레이스곶 통신기지에서도 4월 15일 오전 0시 25분에 위치를 포함한 타이타닉의 조난신호를 수신했다.
이때쯤 이미 타이타닉호는 치명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면서 바닷물이 보일러에 닿을 때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보일러에서 증기가 방출되고 있었다. 몇개의 보일러만이 마지막까지 가동되었는데, 실내조명과 통신수행을 위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통신사들은 침몰에 대한 위험과 소동 속에서 모든 통신회선을 통해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빙산과 충돌했다. 즉각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 증기의 소음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타이타닉호의 통신사들은 요란한 소음 때문에 자기들의 외침을 수령했다는 답신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응답 메시지도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사건발생에 대한 영국측 보고서는 16척의 배와 레이스곶에서 타이타닉호의 조난 메시지를 수신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들 중 몇척만이 도와주겠다는 답신을 보냈을 뿐이었다.
타이타닉호에는 배 전체에 동시에 안내방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배가 곤경에 빠졌다는 소식은 천천히 승객들에게 퍼져나갔다. 객실 승무원들이 객실에서 승객들을 찾아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랭커셔의 콘 출신인 월리스 하틀리가 이끄는 8인 밴드는 12시 15분에 1등실 승객 라운지에서 흥겨운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트 갑판에서 1등실 승객실로 들어가는 넓은 공간의 좌현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연주를 계속했다. 승객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바닷물은 이미 용골 위 40피트, 갑판 앞쪽 선원들의 숙소까지 차올라 있었다.
오전 12시 25분. 타이타닉호의 스미스 선장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싣기 위한 구명 보트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동쪽으로 가던 여객선 카르파티아호가 무선통신으로 조난신고를 받고 전속력으로 사고현장으로 항해중이라는 메시지가 확인되었다.
카르파티아호의 아서 로스트론 선장은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약 92.8㎞ 지점에서 출발, 증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채 사고현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타이타닉호의 통신실에서는 ‘CQD’신호와 ‘SOS’ 신호가 어둡고 차가운 바다로 계속 발신되고 있었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