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31)나라를 만드는 로봇

 로봇도 국적(nationality)이 있을까.

 사람이 만든 물건에는 만드는 이의 정신이 깃든다. 똑같은 쓰임새를 지닌 물건도 제작자의 가치관에 따라 독특한 개성과 만듦새를 갖게 된다. 흔히 일본사람이 만든 물건은 끝마무리가 완벽하다든지 이태리 제품은 디자인이 좋고 독일 물건은 튼튼하다고 간주되는 것도 제작자가 속한 민족, 국가적 특성이 제품 생산과정에 어떻게든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간을 모델로 설계한 첨단로봇이 제조국의 국민성을 쏙 빼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공식적이나마 로봇의 국적도 인정하는 것이 무방할 것으로 생각한다. 비산업용 로봇의 경우 설계컨셉트, 외부디자인만 봐도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대충 드러나게 마련이다.

 예컨대 어떤 로봇이 생명체를 흉내내거나 깜찍한 외양을 구현하기 위해 지나친 노력을 들였다고 판단되면 일단 메이드인 재팬이라 보면 된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로봇이란 영혼이 깃든 살아 숨쉬는 기계생명체기 때문이다. 라면 한그릇도 혼신을 다해 만드는 일본인들은 단순히 기능적인 로봇 구현에 만족하지 않고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두발로 걷거나 강아지와 비슷한 로봇만들기에 과도한 집착을 보여왔다.

 미국인이 만든 로봇을 보면 군더더기를 없애고 기능성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특징이다. 모양은 다소 투박해도 특정기능은 뛰어난 로봇. 실용성을 최고로 치는 미국식 가치관의 표현이랄까. 비록 일본이 민수용 로봇시장을 리드한다지만 우주산업과 군사용도로 쓰이는 특수로봇 분야는 미국이 단연 세계 제일이다.

 유럽에서 만든 로봇제품을 살펴보면 자동차, 반도체 등 일반적인 산업용 로봇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을 찾기 힘들다. 엄밀히 따지자면 유럽인들은 높은 과학기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일본, 미국에 비해 로봇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고 말할 수 있다. 합리적이고 검소한 유럽식 사고방식으로 볼 때 생활속의 로봇이란 자동화기술의 과소비로 비쳐지는 듯하다. 경차에 수동식 미션을 선호하고 운전석 유리창은 손으로 올리는 대다수 유럽인에게 로봇이란 일부 공장에서나 필요한 자동기계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든 로봇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특유의 로봇색깔에 대해서 이제부터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에서 나오는 로봇제품을 보면 과거 일본식 만화와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온 이미지가 뒤죽박죽 혼재된 느낌이다. 역시 한국산 로봇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식의 고유한 로봇컨셉트가 정립되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시대의식과 기술력이 집결된 한민족 특유의 다이내믹한 캐릭터를 지닌 로봇제품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그런 국산로봇이 등장한다면 필히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해야 한다.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