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종종 ‘잠자는 용’에 비유돼 왔다. 아직은 이렇다할 만큼 두각을 나타내고 있진 않지만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기반으로 언젠가는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과 개방의 상징인 상하이나 선전 등의 도시를 보면 중국은 더이상 ‘잠자는 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이들 도시에 어지럽게 펼쳐진 빌딩숲은 중국이 깨어나기 시작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게임산업도 마찬가지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시장 성장세는 한마디로 ‘괄목상대’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빠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온라인게임 시장은 풍부한 내수를 바탕으로 중국 내에서도 핵심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급부상했고 머지않아 종주국인 한국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올 정도다.
중국의 게임시장은 지난 95년을 전후해 PC보급이 급격히 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중국 PC게임 개발업체는 100여개를 헤아릴 정도로 PC게임 개발이 붐을 이뤘다. 시장 상황도 나쁘지 않아 PC게임 신작은 출시와 함께 1만장에서 5만장까지 팔릴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 PC게임 개발업체들은 97년부터 유비아이소프트와 EA·블리자드 등 세계적인 대형 업체에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줘야 했다. 여기에 불법 복제가 점점 기승을 부리면서 PC게임 시장은 급격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현재는 킹소프트(金山公司), 오브젝트소프트 등 서너개 업체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외산게임이 중국시장에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카운터스트라이커’나 ‘스타크래프트’ 등은 중국에서도 수백만장이 팔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불법복제가 심해 정품은 20만장 정도 팔리는 데 그치고 있다.
95년 이전에는 업소용 아케이드 게임이 보급되기는 했지만 90% 이상이 불법 복제물인 데다 게임장 역시 불법영업에 의존해 정식시장으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지난 2000년 중국 정부가 아케이드게임기 수입 전면 중단 및 불법 게임장 폐쇄 등의 내용을 담은 ‘전자게임업소 관리작업의 전개와 유관된 문제에 대한 통지’를 발표하면서 급속히 냉각돼 현재는 2만여개의 오락실이 운영될 따름이다.
비디오 콘솔게임의 경우도 극심한 불법복제 여파로 소니와 MS 등이 진출을 꺼려 시장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지난해부터 불어온 온라인게임 열풍이 중국 게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온라인게임의 경우 불법 복제로부터 자유로운 데다 중국내 인터넷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 텔레콤사들도 초고속통신망 보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온라인게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어 온라인게임 시장규모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정부산하 IT조사기관 CINIC(China Internet Network Information Center)가 지난달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6월말을 기점으로 4580만명을 넘어섰고 온라인게임 유저도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18.6%에 해당하는 840만명에 달한다.
또 시장조사기관인 캐피털시큐리티스(Capital Securities)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규모는 지난 2000년 2000만위안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억5000만위안으로 성장한 데 이어 올해에는 5억위안으로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규모가 축소된 자료로 보인다. 실제 게임을 서비스하거나 유통하고 있는 현지업체들은 중국의 온라인게임 시장규모를 이보다 훨씬 더 크게 보고 있다.
중국 최대포털인 시나닷컴의 경우는 중국의 온라인게임 유저가 1600만명에 달하며 지난해 온라인게임 시장규모를 10억위안 정도로 보고 있다.
또 중국 최대 게임유통업체인 징허스타이(晶合時代)의 장유리 사장도 “올해 중국의 게임시장은 20억위안 규모에 달할 것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온라인게임에 의해 달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비아이소프트의 란하이웬 부총재는 이 같은 전망치가 나오는 배경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터넷이용자의 10%인 450만명만 온라인게임을 유료로 이용하고 이들 1인당 연간 200위안을 지불한다는 최소한의 가정만 설정해도 연간 9억위안 규모의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서 하나의 온라인게임을 한달간 이용할 수 있는 카드가 30∼60위안에 판매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꽤 설득력있는 계산이다.
이처럼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이 큰 폭의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시나닷컴과 넷이지 등 포털을 비롯해 통신사인 차이나텔레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업체가 온라인게임 배급 및 서비스사업에 속속 나서고 있다.
또 지난 6월말 감마니아차이나가 베이징에 법인을 설립한 것을 마지막으로 지관(Softworld)·화의(Waer) 등 대부분의 대만 게임업체가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로 진출했고 유비아이소프트를 비롯한 메이저급 해외업체도 중국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서야 중국 현지법인 설립에 나서기 시작한 국내 업체들로서는 주목해볼 만한 사항이다.
이처럼 외국 게임사들이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중국시장에 속속 진출하면서 중국에서 서비스되는 하드코어류 온라인게임도 연말이면 50여종으로 늘어나 한국시장에 버금가는 격전장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온라인게임 자체 개발 의욕도 불타오르고 있다. 아직은 온라인게임도 현재 20여종의 롤플레잉 게임이 서비스중인 가운데 대부분이 한국·대만·일본산 게임이고 중국 게임은 ‘서유기온라인’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외산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점진적으로나마 중국산으로 대체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오브젝트소프트는 이미 연말 시범서비스를 목표로 ‘진시황의 아들’이라는 온라인게임을 개발중이며 싼다도 2005년부터는 자체 개발한 게임으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마스트플랜을 수립중이다.
이와 관련, 감마니아차이나의 천관위 사장은 “중국 온라인게임시장은 올해 전년대비 500% 이상의 고속 성장이 예상될 만큼 급팽창하고 있다”며 “향후 이 같은 성장세가 지속되면 외산게임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체 게임을 개발해 역수출하는 등 중국이 세계 온라인게임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인터뷰-싼다 천톈차오 총재
“세계 최초로 학생선불카드를 개발했습니다. 온라인게임이 좋은 엔터테인먼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앗아갈 수 있다는 데 공감합니다.”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2’를 중국에서 서비스해 동시접속자 50만명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운 중국 게임업체 싼다의 천톈차오 총재(31)는 요즘 온라인게임의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묘안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온라인게임 열풍이 거세게 일면서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의 사회적 역기능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온라인게임 등급제를 추진하는 등 규제의 칼을 뽑을 조짐을 보이자 선두업체인 싼다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싼다는 최근 학생선불카드를 개발, 염가에 공급하는 등 건전한 온라인게임 문화확산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학생들이 학생선불카드를 이용할 경우 자정이 넘으면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
“학생들의 게임중독은 우리도 바라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득보다 해가 많은 법이니까요. 우리 회사는 많은 유저에게 최상의 게임을 제공해 이윤을 창출하지만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싼다는 학생선불카드와 별도로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이 이슈가 되자 올해초 중국 온라인게임업체로는 최초로 게임 시작화면에 ‘이 게임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밤 늦게까지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구를 삽입했다.
천톈차오 총재는 “게임시작 화면뿐 아니라 자정이 지나면 수시로 게임속에 스팟광고를 띄워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 것을 강조하는 등 건전한 게임문화가 정착되도록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게임이 중국에서 건전한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게임업체들이 당장의 이윤보다 건전한 게임문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면서 “싼다는 지난해 수익금 중 1억2000만원 정도를 중국 온라인게임 산업 발전자금으로 정부에 쾌척한 바 있다”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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