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조사 없이 자격증 남발 EC관련 입력수급 `헛바퀴`

 정부의 전자상거래 관련 국가자격시험이 철저한 수요조사 없이 기획·시행되고 있어 자격증을 획득한 전문인력들이 해당 분야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정부는 자격증 소지자에 대한 관리와 활용 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자격시험의 종류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어서 기존 전자상거래 자격증 소지자들의 불만도 거세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관련 국가자격시험 현황=정부는 지난 2000년부터 4차례에 걸쳐 전자상거래관리사(2급) 자격시험을 실시해 현재 8475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향후 매년 약 1500∼2000명씩 추가로 합격자가 배출될 전망이다. 정부는 또 올해부터 전자상거래운영사 자격시험(시험일 9월 15일)을 신규로 실시할 계획이고 내년부터는 전자상거래관리사 1급 시험을 도입할 예정이어서 전자상거래 관련 인력은 매년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전자상거래 관련 협회와 학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행 전자상거래관리사(2급) 시험에 합격한 8475명 가운데 학생을 제외한 상당수가 전자상거래와 관련이 없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관련 인력이 20만명 이상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도 이들 전문가가 관련 직종에서 전문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이 시험을 기획할 당시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전자상거래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기업 수요조사가 뒷바침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새로 시행되는 전자상거래운영사와 전자상거래관리사(1급)도 현재와는 시장 상황이 많이 다른 지난 99년에 기획된 것이고 시험 성격도 모두 비슷할 뿐 아니라 배출된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비전 제시가 전무한 상태여서 이 같은 현상은 합격자가 늘어날수록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자격증 소지자들의 반발=현재 시행되고 있는 전자상거래관리사(2급) 시험은 첫회에 무려 9만명이 응시할 만큼 인기가 높았으나 정부의 인력 활용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4차 시험에는 응시생이 2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은 뒤로한 채 비슷한 시험을 새로 도입하는 데만 급급하다며 자격증 소지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전자상거래관리사들의 모임인 한국공인전자상거래관리사협회는 “이미 배출된 많은 인력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사회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무조건 시험의 종류를 늘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기존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활용 방안과 새로 도입하는 시험에 대한 뚜렷한 수요조사 등을 통해 현재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양성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과제=정부는 전자상거래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외국의 전자상거래 전문인력 유치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 관련 협회와 학계에서는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고급인력에 대한 활용 방안도 외국 인력 도입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자격증 소지자들에 대해 업계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이들 우수인력이 실무 경험을 겸비한 고급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장기적으로는 자격증 소지자들의 전문분야 투입 현황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시장 수요에 맞춰 전자상거래 관련 국가자격시험을 한층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