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연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30)BIT

 포화상태에 이른 정보기술(IT) 시장을 탈출하기 위한 비상구로 주목받고 있는 신기술이 있다.

 바로 생명공학(BT)과 정보기술을 융합한 생명정보기술(BIT)이다.

 BIT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료와 함께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세계 각국의 연구진들이 반도체 이후 기술의 판도를 바꿀 유망기술로 손꼽고 있다.

 BIT는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와 바이오칩(Bio chip), 바이오멤스(Bio MEMS) 등으로 대표된다.

 바이오인포매틱스는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의 경계에 있는 연구분야로 데이터베이스(DB), 알고리듬, 기계학습, 컴퓨터 그래픽 등과 같은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생물학 데이터를 저장, 분석 및 해석하는 계산적 생물학(Computational Biology)을 의미한다.

 또 생물 시스템의 정보처리 원리를 기초로 컴퓨터나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분야로도 인식되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에서 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물체가 지닌 모든 유전 정보의 특성을 분석, 규명하려는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로 방대한 유전정보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들 정보를 체계적으로 가공하고 분석하기 위해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포스트게놈 연구 방향이 각각 유전체의 기능을 밝히는 기능유전체학(Functional Genomics)으로 바뀌게 되면서 정보의 효율적 통합과 검색, 새로운 분석 알고리듬의 개발, 유전자 망(Genetic Network)의 구성 및 이해 그리고 데이터 마이닝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부각되고 있다.

 바이오칩은 유전자 분석의 첨단 기술로 인정되는 DNA 마이크로어레이 기술 분야다. 생체 물질과 기존의 물리, 화학, 광학적 신호변환기를 조합한 바이오센서에서 DNA 탐침이 내장된 DNA 마이크로 어레이, 효소나 항체, 항원 등과 같은 단백질이 사용된 단백질 칩(Protein Chip)도 포함된다.

 또 동물과 식물 세포를 이용한 셀칩(Cell chip), 신경세포를 직접 사용한 뉴런칩(Neuron Chip), 하나의 칩 위에서 시료의 처리와 생화학 반응, 검출과 자료해석 등 모든 실험이 가능한 랩온어칩(Lab-on-a-chip) 등 생물 유기물과 반도체 같은 무기물이 조합돼 기존의 반도체칩 형태로 만든 혼성소자 형태다.

 바이오멤스(BIO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는 실리콘이나 수정, 유리 등을 가공해 초고밀도 집적회로와 머리카락 절반 두께의 초소형 기어, 손톱 크기의 하드디스크 등 초미세 기계구조물을 만들어 인체에 삽입, 암을 제거하는 용도의 로봇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BIT분야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고전적인 생물학을 보다 빠르게 발전시키는 필요성에 의해 시작돼 그 역사가 10여년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는 정보기술력을 바탕으로 BIT분야에서도 세계 주도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돼 현재 20여명의 전문가들이 연구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방한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강력한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BT와 IT의 융합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동등한 대열의 경쟁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 국내 연구계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국내 BIT 연구계는 크게 국책 연구기관인 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생명공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 3개 국책 연구기관과 마크로젠, 바이오인포매틱스, 아이디알, 엔솔테크, 디지털바이오테크놀로지 등 바이오벤처기업으로 양분된다.

 이들 기관과 기업의 핵심 연구자들은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 융합기술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 차원에서 연구에 나선 30∼40대 과학자들이다. 국내 BIT분야는 전문 인력을 양성할 대학이나 연구소 기반이 갖춰지지 않아 다른 연구분야와 달리 특별한 학맥이 형성되지 못했다.

 3대 국책 연구소 중 지난해 2월 바이오인포매틱스 사업실을 신설해 제일 먼저 BIT 주도권 획득에 나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올해 사업실을 바이오인포매틱스센터로 강화했다.

 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손현석 박사(40)는 영국 킹스 칼리지에서 물리학과 전산학을 마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통해 바이오인포매틱스에 입문한 유학파다.

 손 박사는 유로피안분자생물학연구소(EMBL)와 독일 마르크스플랑크연구소 등 유럽의 첨단 바이오인포매틱스 산실에서 BIT로 진출했다.

 그는 현재 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리눅스 클러스터 시스템을 이용한 초고속 서열 분석 시스템 구축 작업에 나서고 있으며 국내 연구자를 위한 사용자 편의 블라스트(BLAST) 검색 시스템을 올 11월 오픈할 예정이다.

 KISTI에 이어 지난해 6월 BIT 전담 연구조직을 발족하고 융합기술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박선희 박사(44)는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 방법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분야를 통해 성과를 나타내면서 바이오인포매틱스로 활용을 꾀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수학교육 학사,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수학 물리로 석사, 이론 물리로 박사 학위를 마쳐 순수 학문의 탄탄한 바탕을 가진 박 박사는 뉴런을 기술하는 진동자 모델을 도입해 뉴런의 집단적인 동역학을 연구, 세계적 저널인 피직컬리뷰레터(Physical Review Letters) 등에 게재되는 성과도 올렸다.

 박 박사는 대사 경로 등과 같은 시스템적인 생체 현상을 예측해 바이오 산업에 응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핵심 요소 기술과 통합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BT 연구기관, 대학, 병원, 기업과 컨소시엄 형태 구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산발적으로 바이오인포매틱스 연구에 나섰던 한국생명공학연구소는 지난해 10월 국가유전체정보센터를 설립하고 연구원 내 흩어진 바이오인포매틱스 연구 성과 통합작업에 나섰다. 96년부터 유전체체계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허철구 실장(41)은 국가유전체정보센터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충남대 계산 통계학과 학사를 거쳐 전산학과 석사를 마치고 현재는 부산대에서 생물정보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99년에는 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 바이오인포매틱스 부분에, 2000년에는 식물다양성 프런티어 바이오인포매틱스 부분 기획에 참여했으며 200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BT·IT 융합 추진 전략’ 연구책임자로 우리나라 BIT 개발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한 실무파 연구자다.

 2000년 말 바이오 붐을 타고 설립된 바이오벤처기업들의 연구 경쟁도 치열하다. 바이오 데이터베이스 전문 기업인 바이오인포매틱스㈜를 필두로 생물정보지식관리시스템 분야의 엔솔테크, 가상스크리닝기술에 아이디알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바이오벤처 기업 최대 연구 인프라를 갖춘 마크로젠은 DNA칩을 이용한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에서, 디지탈바이오테크놀러지는 랩온어칩의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바이오인포매틱스㈜의 인용호 연구소장(36)은 전산전공 일색인 BIT 연구인력 중 생물학을 기반으로 IT 접목을 추구해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는 한양대 생화학과 학사 후 녹조류에서 단백질 분리 정제 및 특성 규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 소장은 미국 켄터키의대 생리학과에서 초빙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쥐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타깃 단백질로 이 단백질과 결합하는 단백질을 찾는 연구에서 1000여개의 후보 단백질을 찾았고 이들 단백질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생물정보학에 눈을 뜨게 됐다. 박사학위 후 포항공대 생물학전문연구정보센터의 총괄 팀장으로 생물학관련 정보 및 생물정보학 관련 팀장의 역할을 한 인 소장은 바이오인포매틱스㈜로 옮겨 미생물 게놈분석솔루션, EST 서열분석솔루션, 프로테옴 분석 및 관리 솔루션, 서열분석솔루션, 인간유전자관련 이차데이터베이스 등 폭넓은 생물정보 기반솔루션을 구축했다.

 엔솔테크의 김해진 사장(42)은 연구소장을 겸하고 있으며 20년 가까이 ETRI에서 시스템 소프트웨어 및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을 연구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엔솔테크를 설립해 고성능 컴퓨터 시스템 기반 바이오인포매틱스 솔루션과 생물정보데이터·지식관리·콘텐츠 서비스 사업에 나서고 있다.

 경북대 컴퓨터 공학과, 충남대 컴퓨터 공학과 석사를 거쳐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ICU)에서 정보공학 박사를 마친 김 사장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유전체연구소와 협력해 고성능, 저비용 유전자 발현정보 분석 및 기능예측 솔루션인 젠마스터(GeneMasterTM)를 개발해 서울대 의과대학 유전체연구소, 서울대 농업생명공학부, 농업생명공학연구원 등에 공급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또 전세계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유전체 염기서열 비교 분석에 사용하는 블라스트 프로그램의 검색시간을 줄이는 리눅스 클러스터 시스템 개발의 주역이다.

 가상스크리닝 시스템 선두기업인 아이디알의 신재민 연구소장(40)은 시퀀싱 분석과 새로운 유전자 발견, 구조유전학과 기능 유전학 분야 소프트웨어 알고리듬 개발의 전문가다. 신 소장은 연세대 화학과 학사를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에서 물리화학 박사 후 삼성석유화학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91년부터 98년까지 한효과학기술원 분자설계연구실장을 지냈고 2000년까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올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단계에 맞춰 생체실험(in vivo)이나 시험관실험(in vitro)을 거치지 않고 웹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신약후보물질을 제공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마크로젠의 생명정보사업부 박현석 박사(39)는 올 3월 ‘펄로 시작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책을 펴내 바이오인포매틱스 보급에 앞장섰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전산학 석사,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에탄올 발효산업 미생물인 자이모모나스 전체 염기서열 해석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 국내 최초로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바이오정보센터(NCBI)에 관련 정보를 등록시켰다.

 디지탈바이오테크놀러지의 정찬일 연구소장(33)은 보기 드문 하드웨어쪽 BIT인물이다. 올 초 국내 바이오기업 최초로 실험실 자동화 전시회인 ‘랩오토메이션 2002’에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을 안았던 정 소장은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거쳐 의공학협동과정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까지 서울대 의학연구원 의용생체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정 소장은 미국 MIT 의공학연구소 박사후과정을 거쳐 디지탈바이오테크놀러지에서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국내 최초로 랩온어칩 가공 서비스인 PMM(Plastic Micro Machining) 서비스를 지난해 시작했으며 1나노리터 이하의 극 미량의 샘플을 분석할 수 있는 셀애널라이저(Cell Analyzer) ‘C박스’ 개발의 주역이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