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많은 정보보호 업체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작년까지 고속성장을 거듭한 기세를 몰아 올해는 성장과 내실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전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견인차로 정보보호 업체들은 수출을 꼽았다.
작년까지 내수시장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외진출을 준비해온 정보보호 업체들은 최대 시장인 미국과 일본에 앞다퉈 지사를 설립하고 영업망을 구축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샘플 차원의 수출도 하나하나 이뤄져 업계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밋빛 전망이 크게 탈색됐다. 답답한 내수시장의 부진도 큰 이유지만 수출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100억원대의 수출을 기대했던 선두업체들조차 상반기 수출이 10억원 안팎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제품의 기술력. 업체수로는 세계 정보보호 업체 3군데 중 1군데가 국내기업일 정도지만 정작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품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모 정보보호 업체의 사장은 “국내에서는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업체도 외국에 나가서는 빛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기술수준”이라며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나서 국내 정보보호 업체의 기술력이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K4 인증 등 국내 정보보호 업체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지만 조만간 CC처럼 국제평가기준이 적용되면 외국기업들의 국내시장 진입장벽이 낮아져 내수시장마저도 불안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래도 사면초가를 풀어낼 수 있는 해답은 수출이다. 수출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은 우선 킬러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백신이나 침입탐지시스템(IDS)처럼 어느 정도 기술적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외국의 대형업체와 정면으로 부딪히지 말고 틈새시장을 노리는 편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서버나 PC뿐만 아니라 산업용 장비에 필요한 정보보호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님다나 코드레드 바이러스 이후 바이러스와 해킹의 위협은 PC나 서버에서 윈도 운용체계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로 확대됐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다면 어느 것이나 보안 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같은 틈새시장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백신업체인 하우리가 미국 반도체장비 업체에 백신을 공급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설치나 관리가 복잡해 패키지 제품을 기피하는 중소기업을 겨냥해볼 만하다. 이미 온라인을 통한 정보보호 서비스는 일본과 중국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안철수연구소가 일본 포털업체와 유료 온라인 백신 서비스 공급계약을 맺고 실적을 내고 있으며 잉카인터넷도 해외 온라인게임 업체에 온라인 보안솔루션을 성공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밖에 국내 정보보호 업체의 고질병인 조급증을 고치는 것도 필요하다. 올해 정보보호 업체의 전략적 공략지역인 일본의 경우 기업이 하나의 솔루션을 도입하는데 6개월에서 1년 가량의 철저한 테스트를 한다. 물론 테스트에 필요한 비용을 일본기업측에서 지불하기 때문에 국내 정보보호 업체들은 이를 호의적인 반응으로 받아들여 실제 계약에 다다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초기 반응에 따라 호들갑을 떨지 말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정보보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체크포인트나 대만의 트렌드마이크로도 시작은 작은 로컬업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미국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며 “국내 정보보호 업체가 자체 구조조정과 업체간 인수합병을 통해 체질개선을 한 후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에 따라 공략시장과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수출에 관한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