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아남반도체 인수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TI와의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동부전자, 아남반도체, 그리고 아남의 대주주인 앰코테크놀러지의 향배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부그룹은 이에 대해 일단 아남반도체의 지분인수를 위해 총 1740억원 중 이미 1170억원을 투입한 만큼 1대 주주가 되기 위한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앰코테크놀러지도 어떤 방식으로든 아남반도체의 지분율을 낮춰야 하는 만큼 동부를 우선 협상자로 지분매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I를 제외한 대형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동부전자는 양산능력과 가동률을 올리기 힘든 상황이어서 동부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한 실정이다. 결국 동부와 아남(앰코)의 관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더욱이 동부와 아남측이 특단의 대책을 찾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동반 부실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협상 왜 깨졌나=동부측은 협상결렬 이유에 대해 TI가 요구한 0.13㎛급 공정기술 이전료와 납품단가 등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TI는 아직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양사가 서로 다른 ‘접점’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남반도체 이외에 대만의 TSMC를 주력 파운드리업체 중 하나로 운영하고 있는 TI로서는 굳이 동부전자에 0.13㎛급 공정을 시간을 늦춰줘 가며 물량을 내 줄 이유가 없다는 것. 게다가 TI는 향후의 전략적 파운드리업체를 300㎜ 웨이퍼에 90나노미터(㎚)급 공정기술 이전까지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동부가 미덥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면 동부는 이른 시일내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고객을 확보해 라인 가동을 본궤도에 올려 놓아야 하는 입장이어서 TI와의 계약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독점적인 협력관계에 준하는 계약을 원하는 TI의 조건을 받아들이기에 동부로서는 도시바 등 여타 고객사도 걸리고 추가 투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아남 인수 어떻게 되나=일단 동부측이 밝힌 공식 입장은 장기적으로 TI와의 관계를 생각해 90㎚ 공정의 기술이전에 대해협상을 계속하며 아남 지분 인수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앰코도 아남반도체의 지분매각을 놓고 동부와 계속 협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협상의 전제조건이었던 TI와의 파운드리 계약이 깨진 상황에서 당초 계약서대로 양사의 협력관계가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동부측은 우선 오는 28일 치러야 할 나머지 지분 인수자금(570억원)이 고민거리다.
잔금을 치러야 앰코측 16.1%의 지분을 확보, 최종적으로 아남의 1대 주주(지분율 25.8%)가 되기 때문에 중도하차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앰코가 TI와의 협상결렬에 버금가는 다른 협상조건을 추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앰코의 영업권 이전에 대한 금액을 깎거나 동부측의 지분율을 더 높여주는 등의 미끼가 제시될 것이라는 예측이 그것이다.
◇동부그룹의 선택=결국 공은 다시 동부그룹에 돌아왔다. 아남반도체를 인수해 세계 3위의 파운드리 전문업체가 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그대로 가동할 것인지, 아니면 말 것인지의 전략적 판단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동부는 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금융권을 설득하고 외자유치를 통해 90㎚ 공정 등 차세대 설비투자 등을 단행할 것인지 여부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차세대 수종 육성 사업 마련을 위해 반도체시장에 진출한 동부그룹의 행보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