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산업 변해야 산다>(3)밖에서도 새는 바가지

 3.밖에서도 새는 바가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반도체 검사장비를 만드는 A사 사장은 지난해 대만 소자업체의 장비구매 담당자로부터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얼마 전 한국의 다른 검사장비업체인 B사도 자기 회사를 다녀갔는데 “최근 삼성전자가 선택한 장비가 B사의 것”이라는 말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사실 그당시 삼성전자는 A사와 B사의 장비를 놓고 성능을 시험한 후 최종적으로 A사의 장비만 구매하기로 결정한 이후였다. A사의 해외영업담당자로부터 이 내용을 접한 바 있는 대만의 소자업체는 ‘과연 누구 말이 참말인지’를 물어왔던 것.

 결국 A사는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수주 계약서 사본을 팩스로 전송한 것은 물론 장비납품가격을 경쟁사 수준으로 낮춘 후에야 소량이나마 수출할 수 있었다.

 이같은 경우는 사건축에도 끼지 못한다.

 2년전 모 후공정장비업체는 해외시장 개척을 빌미로 해외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장비를 무료로 공급한 적이 있다. 해외시장을 두고 국내 또 다른 장비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이 우려되자 일단 일정기간 사용해본 후 성능이 마음에 들면 돈을 내고 그렇지 않으면 부담없이 반품하라는 조건이었다.

 당연히 경쟁업체의 해외판로는 막힐 수밖에 없었고 수개월 후에는 공짜장비 제공업체마저 반품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다.

 해외 유수 장비업체들과의 시장경쟁도 버거운 마당에 동료격인 같은 나라의 장비업체들끼리 낯선 땅에서까지 출혈경쟁을 벌여야 하니 정력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의 한 가스공급장치업체는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중인 대만시장을 공략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연초부터 국내업체들이 가격경쟁에 나서면서 ‘물’을 흐려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 해외 선진업체들의 입지가 국내업체들보다 탄탄한 외국시장에서 국내업체들끼리 출혈경쟁을 벌이는 통에 국산제품의 시장경쟁력 약화는 물론 해외에서는 더 많은 장비 유지보수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 장비판매가격이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높아야 한다는 철칙이 깨지고 있다.

 일부 장비업체가 근시안적인 해외고객관리로 한국산 장비 전체의 이미지를 흐리는 경우도 있다.

 출혈경쟁을 감행하면서까지 애써서 해외업체로부터 수주한 후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장비 유지보수를 소홀히 해 한국산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시키는 사례다. 시장을 개척한 후에는 철저한 고객관리로 추가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영업전략이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국내에서 습관화된 과당경쟁과 출혈경쟁이 해외에서 그대로 재현되면서 국내 장비업체들이 대내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