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영국 출장길에서 특이한 상점 한 곳을 발견했다. 간결한 인테리어의 녹색매장에서는 목욕제품류와 화장품들을 팔고 있었다. 상품들은 단순한 디자인의 리필용기에 담겨 있었고 진열대 옆에는 동물실험 반대에 관한 리플릿들이 꽂혀 있었다. 화장품 가게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이나 장식은 볼 수 없고 오히려 캠페인 행사장에 가까운 매장 분위기였다. 화장품 매장에 대한 관념을 흔들어버린 그 신선함은 오랫동안 내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바로 설립 20여년 만에 전세계 49개국에 1700여개의 매장을 가진 세계적인 화장품회사로 성장한 ‘보디숍’이었다. 창업자이자 CEO인 애니타 로딕은 환경과 인간의 존엄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활동을 통해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기업이념을 세우고 제3세계의 빈민과 원주민의 생계를 지원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동물실험 반대, 자아존중 캠페인, 환경보호운동 등을 기업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실행해 왔다. CEO와 기업이념, 기업활동 그리고 기업의 이미지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케이스다.
스스로를 ‘쌈지라는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우리나라 토털패션업체 쌈지의 천호균 사장 역시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신세대 예술가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활동을 지원하고 언더그라운드 밴드나 대중예술을 기업행사로 이벤트화했다. 지원한 작품들은 제품의 디자인과 광고에 적용함으로써 쌈지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가치를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대중과 패션 그리고 문화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을 거뒀다.
보디숍이 화장품회사 그 이상의 사회적 기여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쌈지 또한 문화산업을 이끌고 지원하는 패션기업으로 인식된다. 상품과 CEO 그리고 제대로 형성된 기업이미지는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낸다.
기업의 비전과 이상은 사회의 흐름을 만들고 변화를 가져오는 출발점이다.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어떤 의미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기업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활동 선두에 선 CEO, 그는 기업광고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인지도와 신뢰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