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처리문제가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향후 하이닉스의 향배를 결정할 도이체방크의 구조조정 방안이 당초 예상보다 한달여간 늦어진 가운데 ‘선(先) 부채 축소, 후(後) 분리 매각’이라는 구조조정 잠정안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투신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지난주 말 잠정안에 대해 ‘재검토를 통한 수정’을 요청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주 채권금융기관회의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었던 하이닉스 처리 방향이 관련 주체들의 간섭으로 더 늦어질 전망이다.
◇구조조정안 잠정안 뭘 담았나=도이체방크가 마련한 잠정안에는 하이닉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총 6조3000억원의 부채 중 내년과 내후년에 각각 돌아오는 1조원과 3조3000억원에 달하는 부채의 만기를 2년씩 연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출자전환을 통해 무담보 대출금의 50%(1조8500억원)를 깎아줘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개선된 재무상태에서 비메모리 부문인 시스템IC컴퍼니와 미국 유진공장을 분리, 매각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도이체방크는 원매자가 없는 상황에서 부채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하이닉스의 회생이나 분리매각도 어렵기 때문에 먼저 부채를 축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전제를 단 것으로 알려졌다.
◇왜 반발하나=일단 정부가 난색을 표명한 데는 매각방침에 대한 확고한 입장정리가 없다는 것 때문으로 비춰진다.
실제 채권단을 대상으로 잠정안에 대한 설명회도 개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수정작업을 요구한 것은 ‘부채 축소 후 분리매각’이라는 기본 골자에 대한 이견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같은 수정방침은 지난 4월 마이크론과의 MOU 부결 이후 유일한 대안이 매각임을 수차례 강조해온 정부와 당분간 매각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기업가치 유지에 초점을 맞춘 주채권은행의 시각차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무담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데 대해 투신권이 난색을 표명하는데 있다. 대손 충당금을 사전에 준비하고 있는 은행권과는 달리 손실 보전책으로 이를 상쇄해야 하는 투신권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총 주식 수 52억주에 달하는 현 상황에서 1조8500여억원을 다시 출자 전환하게 되면 주식 수는 약 90억주(주당 500원 기준)에 달해 차등 감자를 요구하는 소액주주와 채권단간 분쟁은 또다시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같은 채무조정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의 분리매각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점도 의문이다.
정부가 계속 매각을 강조하더라도 재협상 가능성을 열어놓았던 마이크론이 관망하는 자세로 돌아선 데다 시스템IC 분리매각도 부채조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산가치보다 부채(8억5000만달러)가 더 많은 미국 유진공장을 매각하려면 하이닉스가 현금을 더 얹어줘야하는 형편이다.
◇하이닉스 어디로 갈까=하이닉스는 재무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회사 운영적 측면에서도 결코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당초 2분기 말부터 반도체 및 IT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되고 3분기도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하이닉스의 행보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다만 블루칩 양산, 256M D램 수율 안정화 등 기술적 과제를 극복했고 2분기 D램(128M 기준)의 평균판매가격(ASP) 3달러대가 넘었다는 점이 하이닉스를 버텨주는 호재일 뿐이다.
그러나 9월 신학기 수요가 어떻게 전개될지 조차 불투명한 상황인 데다 남은 3분기와 4분기의 D램 가격이 어떻게 움직일지 전체 매출을 전혀 낙관할 수 없는 처지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지적한 것처럼 과도한 부채문제를 선결하지 못하면 하이닉스에 대한 구조조정은 매수자 부재와 대선 등 정치적 이슈에 묻혀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당장 원매자가 없는 상황에서 다시 고민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면서 “결국 도이체방크가 마련한 구조조정안에 이견을 조율하는 수준에서 빨리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