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호 베이직기술투자 사장
요즘 벤처업계를 둘러보면 복잡하게 엉켜버린 실타래가 연상된다. 엉켜버린 원인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실타래도 너무 커져버렸다.
단순하게 보면 벤처생태계는 사람과 돈이 주체인 하나의 시장이다. 따라서 시장참여자의 역할과 행동을 개선해 혈액의 기능을 담당하는 돈의 흐름을 변화시킨다면 벤처생태계의 선순환을 다시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시장참여자에는 벤처기업가·투자자·정부 등이 있다. 우선 벤처기업가를 살펴보자.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벤처기업가의 양은 너무 급증했고 평균적인 질은 저하됐음이 느껴진다. 90년대의 벤처기업가는 대기업 등에서 안정되고 유망한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소액의 자본을 스스로 조달해 이용 가능한 경영자원을 바탕으로 한 단계씩 연구개발과 기업 성장에 온힘을 집중했다. 또한 소수의 필수인력이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과실을 공유하는 데 있어 공감대를 가졌다. 그러나 벤처 버블 이후에는 너도 나도 한 건(?)을 위해 경영·기술·마케팅·재무 등 기업경영에 필요한 각 기능을 담당할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기업을 구성해 제품을 개발했다. 아울러 초창기부터 외부로부터 막대한 소요자금을 조달한 벤처기업이 많이 설립됐다. 외형상 각 분야의 유능한 인력으로 구성된 좋은 기업으로 보이지만 이 같은 기업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벤처의 모습을 전제로 막대한 자금을 무모하게 외부로부터 조달함으로써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 이르면 선량한 외부투자가를 곤경에 몰아넣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벤처 초심으로 돌아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와 성공에 대한 자신의 능력, 조직구성원과의 공감대 및 성과 공유 등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두번째는 투자가다. 최근의 벤처투자가는 고율의 투자수익 환상으로 무분별한 투자를 실행했고, 그 대가의 고통은 벤처투자가 자신뿐 아니라 벤처생태계 전체를 어려움으로 몰아넣었다. 벤처생태계의 혈액인 자금이 고갈돼 모든 시장참여자의 성공을 위한 선순환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투자가라는 벤처캐피털과 기관투자가 이외에도 법인 및 일반 벤처투자가의 80%이상이 길어야 2년 이내의 기간을 기대하고 벤처투자를 실행했다. 따라서 지금처럼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거나 유동성이 있더라도 평가손실이 50% 이상 초과한 상황에서는 참고 기다리는 것도 거의 포기상태고, 신규투자는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이나 산업 경기의 속성상 하락 뒤에는 반드시 상승이 수반된다. 다만 그 시기를 모두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투자대상인 벤처기업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IT 등의 주요 산업 환경, 그리고 유통시장인 코스닥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유치단계인 우리나라 벤처생태계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 역할이나 영향력이 다른 시장참여자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정부를 살펴보자. 정부의 정책이란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시행돼야 하고 더욱이 한 나라의 산업구조를 개선시키는 차원의 정책은 한 시대의 유행이나 어느 일부분의 부작용으로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척박한 자갈밭에서 한 뿌리의 풀과 나무를 기르는 심정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그 성과가 조금 나타나는 시점에서 본질과는 다른 일부 부작용으로 이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풀과 나무를 갈아엎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공공부문 IT시장에 대한 제도적인 벤처기업 참여 확대, 기술개발 프로젝트 및 산학협동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통해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벤처산업의 결실을 유도하는 한편 그들이 정도(正道)의 기업경영과 사회적 책임의 인식을 통한 투자자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자율적 규제를 강구하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