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업계 주도 유통기구 ‘유통산업위원회’ 유명무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온·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참여해 관심을 모았던 유통산업위원회(위원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 지난해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주도로 설립된 유통산업위원회는 설립 1년을 넘어서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사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업은 물론 모임도 정례화되지 못해 국내 유통산업의 발전을 위해 설립됐다는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화려한 설립배경=유통산업위원회는 지난해 6월 학회나 협회와 달리 순수하게 기업 입장에서 유통 산업을 선진화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발족 당시 국내의 재계 실력자들이 모두 참여해 정부를 비롯한 산업계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백화점과 할인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비롯해 홈쇼핑·인터넷쇼핑몰 등 온라인 업체가 다수 참여해 국내 유통산업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위원회는 설립 당시 취지문을 통해 “유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제계 차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 수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사업으로 유통 발전 관련 대정부 건의, 정보 유통 인프라 구축, 온오프라인 공동 사업 및 협력 등을 꼽았다.

 현재 유통위원회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이인원 롯데쇼핑 대표, 김진형 신세계 대표, 이병규 현대백화점 대표, 강말길 LG유통 부회장, 강태인 e현대 대표, 조형철 CJ39쇼핑 대표, 정호성 LG홈쇼핑 부사장 등 20여명의 주요 온·오프라인 유통업체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초라한 운영과 사업=하지만 유통위원회는 설립 취지와 달리 몇 차례 모임을 가졌을 뿐 아직까지 이렇다 할 사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초기 모임에서 다양한 사업이 논의됐지만 각 사의 입장 차이로 의견 조율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모임에 나오는 회원수는 물론 관심조차 현저하게 떨어져 사실상 해체 위기에 몰리고 있다. 한 때 유통 분야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대규모 콘퍼런스를 기획했으나 각 사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원점에서 맴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설립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업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동종 업태 사이에서도 미묘한 경쟁 심리가 작용하고 백화점과 할인점,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 정보화의 수준 등에서 서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근근히 모임을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하반기를 목표로 콘퍼런스 개최를 논의중이지만 아직까지 사업계획은 물론 일정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유통 분야에서 다양한 신업태가 등장하고 정보통신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전자상거래가 확대되며 유통시장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돼 국내 유통산업도 일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며 “유통 산업계에서 제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유통위원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