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선보인 음반 가운데 시대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돈을 주고 살 만한 음반이 없다’는 네티즌의 의견이 상당한 것을 보면, 이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음반은 아마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신라음반이 내놓은 ‘경상북도 구전민요의 세계’는 이런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이 음반은 67년부터 72년까지 안동·영양·청송·영천·성주·봉화 등 경상북도 태백산맥 일대에서 전승된 서사민요를 녹음한 대기록을 담은 것으로 오늘날에는 도저히 들을 수 없거나, 설사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각편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즉 시대의 변화요인을 반영하면서도 오늘날에는 멸절되어버린 소리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또 이 음반에는 여성민요, 이른바 부녀요가 풍부하게 채집돼 있어 내용상 가치도 나무랄 데가 없다.
이는 일체의 상업성을 배제하고 시대의 생활상과 시골 풍경소리를 그대로 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있은데다, 무삭제 원칙이 고수됐기에 가치가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조동일 서울대 교수가 60년대 후반부터 직접 녹음기를 들고 다니면서 채록한 실황녹음이다.
조동일 교수가 한국 민요, 특히 경상북도 민요에 눈을 돌린 것은 당시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의식을 전환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경북 일월면으로 돌아가 이땅에 스며있는 토속소리를 접하면서 새롭게 자아를 확립하고 학문적 과제를 깨닫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조동일의 역사적인 녹음작업은 경상북도 ‘서사민요’의 진수를 보존하는 시대적 사명이 됐고, 녹음과정에서 ‘서사민요연구’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민요연구의 초석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민요론의 큰 틀인 민요체계론과 율격론의 뼈대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체 9장으로 구성된 ‘경상북도 구전민요 세계’는 1장에 극락가·지신 밟는 소리·지게소리 기생인물타령 등이, 2장에는 자장가·봄처녀·삼 삼는 소리 등이 담겨 있다. 또 3장에는 베틀노래·한살 묵어 어마이 죽어 등 29곡, 4장에는 모 심는 소리·객귀 물리기 등 19곡, 5장에는 육자백이·형님 형님 사촌형님 등 22곡, 6장에는 어사용·창부타령 등 33곡, 7장에는 시집살이노래·메밀노래 등 21곡, 8장에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시집살이노래 등 32곡, 마지막 9장째 CD에는 어사용·목단강 이종사촌 등 12곡이 수록돼 있다.
조동일 교수가 채록한 ‘경상북도 구전민요 세계’는 민요를 연구하는 이들과 우리 민요를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