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살 철없는 아저씨와 9살 진지한 소년의 특별한 여름방학 동행기.’
일찌감치 국내에 수입됐지만 여름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 개봉하게 된 ‘기쿠지로의 여름’은 조금은 독특한 영화다. 기타노 다케시 출연·감독 작품 중 밝고 가벼운 톤을 유지하고 있는 첫번째 영화라는 점이 그렇고 엄마찾기에 나선 마사오가 아닌 50살이 넘은 기쿠지로가 이 여행의 진정한 주체라는 점이 또한 그러하다. 하나의 줄거리를 이어가는 방식이 아닌 예측을 불허하는 유쾌한 에피소드의 나열을 통해 영화를 전개하는 것도 다른 작품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요소다.
기쿠지로의 여름이 30일 개봉을 앞두고 27일 씨네하우스에서 전자신문 독자 400명을 먼저 만났다. 전자신문 8월 독자 시사영화로 선정된 기쿠지로의 여름은 엄마를 찾아가는 소년 마사오와 여기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 전직 야쿠자이자 건달 기쿠지로의 동행기를 그린 로드무비다.
이 영화에서 엄마찾기는 아저씨와 소년의 여행을 이끄는 끈이 되지만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엄마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결코 일상에서는 가까워지기 힘든 두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이것이 자기 삶의 슬픔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더 부각된다.
아빠가 죽고 엄마도 떠나고 할머니와 살게 된 이미 철들어 버린 소년, 전직 야쿠자로 묘사되지만 내세울 것도 없고 마누라에게서도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건달.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의 실제 아버지 이름이기도 한 기쿠지로와 보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마사오와 기쿠지로를 통해 슬프고도 유쾌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 낸다.
모두가 기다리는 여름방학. 하지만 마사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할머니는 매일 일을 나가시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캠핑가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 어느 날 먼 곳에 돈을 벌러 갔다는 엄마의 주소를 알아내고 그림 일기장과 방학숙제를 배낭에 메고 엄마를 찾아 나선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남편 기쿠지로에게 마사오의 보호자로 동행시키면서 장장 600킬로미터 걸친 여정이 시작된다.
기쿠지로의 여름에는 기발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그저 잔잔한 감동을 주려니 생각했던 관객들은 상영시작 10분만에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는다. 한판 신나게 놀아보자는 이 영화의 기조처럼 쉴새 없이 터지는 웃음, 예상치못한 유희에 대한 폭소가 러닝타임 120분을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논밭의 UFO, 수박서리 시뮬레이션, 누드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기쿠지로가 마사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주변사람들과 벌이는 놀이는 기상천외하다. 물론 가슴찡한 감동은 기본.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기타노 다케시의 즉흥적인 감흥으로 연출됐다는 점. 완결된 시나리오 없이 그때그때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편의 근사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케시의 역량이 또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나비, 소나티네, 키즈 리턴 등을 통해 보여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워드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절망, 죽음, 그리고 폭력적인 분출이었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에서의 밝은 세상으로의 회귀는 성공적인 것 같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