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잔금지불 유예 전격 선언 아남반도체 인수 `신경전`

 동부그룹이 아남반도체 인수를 놓고 아남의 대주주 앰코테크놀러지와 막바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부그룹은 28일 앰코테크놀러지에 지급해야 할 아남반도체 지분인수 잔금(약 570억원)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동부측은 한달 정도의 유예기간 동안 앰코와 계약조항을 놓고 다각도의 협상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동부측은 “유예기간에도 협상을 진행하겠지만 계약의 전제조건이었던 TI와의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앰코측이 계약서상 명기돼 있는 ‘납득할 만한(reasonable)’ 대응조건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아남의 인수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의 반도체사업 육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은 중대한 기로를 맞게 됐다. 특히 동부측이 이를 계기로 새 그림을 그리고 나올지 아니면 예정대로 아남반도체 인수를 통한 파운드리 전문업체로 거듭나는 방안을 타진할지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동부측이 아남반도체 인수를 예정대로 추진하고 TI와의 협력방안은 추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부의 이번 잔금지급 유예조치는 아남과의 협상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보인다”면서 “동부측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부, 잔금지급 왜 늦췄나=일단 앰코측의 반응을 타진해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업계 관측통들도 동부측이 아남 인수를 포기하고 앰코와의 계약을 백지화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TI와의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계약 여부의 키는 동부측으로 넘어왔고 동부측은 이 틈을 비집어 협상의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TI가 아니면 다른 고객을 연결시켜 주든지, 아니면 영업권 인수비용 등 여타 협상조건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용일 가능성이 크다.

 ◇앰코 전면대응=그러나 이같은 동부측의 무언의 요구를 앰코측이 그대로 받아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앰코측이 이를 맞받아치는 강공수를 펼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앰코측은 최근 “TI와의 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매각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선언하고 “우리는 아직도 파운드리업체이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서 동부와의 협상결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배수진을 치고 나선 것.

 특히 앰코와 아남반도체는 동부와 TI와의 협상결렬에도 불구하고 TI와의 전략적 제휴관계는 변함이 없으며 Bi-CMOS를 통한 아날로그 칩세트 공급계약 등 추가주문도 받았다고 TI와의 협력관계를 과시해 보이기도 했다. 이는 TI와의 협상결렬에 대한 책임소재를 동부측에 넘기는 동시에 헐값에 매각한다는 주변의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풀이된다.

 ◇동부-아남 어떻게 될까=상당한 출혈을 감내하면서 양측이 돌아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양측이 결별 수순을 밟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양측이 갈라서더라도 아남 지분 인수를 위한 납부금액은 앰코측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되돌려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앰코측이 아니라 동부측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이번 협상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할 경우 동부전자의 앞으로의 행로는 예측을 불허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와 함께 아남이 수익 측면에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동부측의 입장에서 보면 투자대비 실익이 괜찮은 협상을 쉽게 파기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게 업계 관측통의 분석이다. 따라서 예정보다 늦어지겠지만 동부와 아남은 결국 한 배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동부측이 아남을 인수하게 되면 당분간 부천 아남 공장을 중심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전개하고 경기가 호전되면 동부 음성 공장을 앞세운 파운드리사업을 전개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