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컴퍼니>벤처업계 `마라톤 마니아` 2인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인다’고 했던가.

 비리로 얼룩진 벤처업계에서도 한편에서는 신체단련을 통해 건강한 벤처정신을 되새기려는 이들이 무섭게 세력(?)을 늘려가고 있다. 전쟁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단숨에 42.195㎞를 내달렸던 마라톤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이들, 바로 벤처업계의 마라토너들이다.

 인터넷 광고대행사 코마스의 홍원의 상무(40)는 지금부터 일년반 전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된다. 매일 계속되는 야근, 풀리지 않는 피로로 고민하던 끝에 일단 뛰어보기로 마음먹은 것. 처음 1년 동안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타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마라톤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사실 답답한 실내에서 벽만 보고 뛴다는 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거든요. 나중에는 헬스클럽에 가기싫어 지더군요. 하지만 막상 마라톤을 해보니 러닝머신보다 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더군요.”

 마라톤은 인내심은 물론 과학적 지식까지 필요로 했다. 관절과 척추 등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착지법과 달리기 자세를 익혀야 하고 장거리를 뛰기 위해 평지는 물론 언덕훈련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정신과 기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벤처기업과 같았다.

 “매주 금요일 밤 청계산에 오릅니다. 아무도 없는 산을 뛰어 오르다보면 숨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능선을 뛰면서 느끼는 쾌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지요.”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 후 1년새 12㎏이나 몸무게가 줄었고 육류를 즐기던 식습관이 사라졌으며 담배도 끊을 수 있게 됐다. 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처리를 빠르게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등 시간관리에도 대가가 됐다. 강릉, 삼척 등 전국 유명 관광지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었다. 요즘은 인터넷광고 업계 연합체인 인터넷마케팅협회 소속사 임원들과 격월로 마라톤을 즐기며 사업에도 도움을 받고 있다. 홍 상무는 오는 11월 자그마치 120㎞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다.

 정보보안 솔루션 업체인 싸이버텍홀딩스의 최영섭 경영기획실 과장(33)은 지난 5월 사내에 싸이버텍 마라톤 동호회를 결성했다. 단순히 건강과 친목 도모를 위해 10여명이 모여 만든 모임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달리기에 매료돼 지난 6월 열린 SAKA마라톤대회에서는 조창환 부사장을 비롯한 회원 4명이 풀코스를 완주했다.

 “사내에 5인 이상이 동호회를 결성하면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서 어떤 동호회를 만들까 고민했습니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다 결정된 게 마라톤이었죠. 처음엔 장난삼아 시작한 건데 몇 달새 마니아가 다 됐어요. 마라톤이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달리면 나오는 호르몬이 기분을 좋게 한답니다.”

 적어도 1주에 2∼3일은 퇴근후 바로 한강 둔치에 모여 10㎞ 이상 달린다. 단체로 맞춘 트레이닝복을 입고 함께 뛰노라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도, 개인적인 고민도 모두 날아가 버린다. 별다른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 데도 2개월만에 3㎏이나 몸무게가 줄어들었고 운동을 위해 쓸데없는 술자리를 줄이게 됐을 정도다. 동호회원들과 자주 자리를 함께 하면서 서로의 이해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인내력이 커진다는 게 장점이다. 최 과장은 오는 10월에도 사내 동호회원들과 함께 통일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말이 쉽지 42.195㎞를 쉬지 않고 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잘 뛰는 사람도 어느 지점에선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고 그만두고 싶어지지요. 평소에 꾸준히 체력단련을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완주할 수 있습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다. 벤처업계의 마라토너, 그들은 오늘도 달린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