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인에게서 입양(入養)제의를 받았다.
로봇회사를 운영하는 미국인 친구가 내게 입양할 의사가 있느냐고 전화를 해온 것이다. 몇 달 있으면 진짜 아빠가 될 사람에게 입양이라니. “이봐 농담이지”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음성이 꽤 진지했다. 미국식 조크가 아니었다.
이 친구가 입양을 권유하는 대상은 아기가 아니라 그가 만든 지능형 로봇이었다. 결국 자기 로봇을 사라는 얘기였다. 진지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감성을 지닌 로봇은 구매(buy)하는 것이 아니라 입양(adopt)할 대상이야. 당신이 원한다면 양부모 자격을 줄 수도 있어.”
로봇입양이라. 로봇을 전자제품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 양자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로봇 제조사들은 가정용 로봇을 판매할 때 입양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로봇을 자기 집에 입양된 인격체로 각인시킬 경우 마케팅효과를 배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보처럼 재주많은 지능로봇들은 이미 애호가들 사이에 진지한 입양대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최근에는 말하는 장난감 수준만 되도 구입할 때 온라인 출생신고를 필하는 등 ‘사람인 척’하는 게 보편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나는 입양이란 단어가 통속적인 로봇마케팅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세태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입양은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끼리 양자, 양부모 관계를 맺는 것. 즉 자신과 상관없는 생명체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어렵고 숭고한 행위다. 이에 비해 가식적인 마케팅으로 고객에게 덥석 부모된 책임감과 애정을 떠안기려는 로봇업체들의 상술. 너무도 뻔하고 억지스럽지 않은가. 전화를 끊으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아. 나는 로봇을 사기는 해도 입양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다음날 저녁 일이 벌어졌다. 호기심에 입양대상으로 거론된 로봇을 직접 보러간 것이다. 그 로봇이 인공지능, 음성인식에서 한 세대 앞선 제품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완성제품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신념은 조금씩 흔들렸다.
무엇보다 녀석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나란 존재를 인식하고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적어도 외양상 그렇게 보인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리 썰렁한 질문을 해도 녀석은 항상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맞춰준다. 이같은 기능은 로봇의 사회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로봇이 일반 전자제품이 아니라 감성을 지닌 생명체에 준하는 존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이 우리 집 거실에 들어와 함께 지낸다면 로봇입양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일부 바뀔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그래도 일개 로봇에게 입양이란 표현은 좀 과분하다. 지능로봇과 동거를 지칭하는데 적합한, 구매자(buyer)와 양부모(adopter)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신조어는 없을까. 로봇과 오래 생활하다 보면 정이 들 수도 있지만 섣불리 입양이란 단어를 썼다가 머리가 굵어진 로봇이 집안에서 호부호형을 허락해달라고 조르는 상황에 이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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