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10월부터 전국 공공장소에 설치된 장애인용 휠체어 리프트 1700여대가 운행 중단될 위기로 치닫고 있어 ‘장애인들의 교통대란’이 예상된다.
업계는 이에 따라 정부 차원의 대책이 서둘러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왜 이같은 사태가 빚어졌나=산업자원부는 지하철역사에서 빈발하는 리프트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장애인용 리프트의 설치·규격에 대해 엄격한 안전기준을 공표했다. 산자부는 당시 주먹구구식으로 명시한 장애인용 리프트에 국제 ISO기준을 준용한 새로운 안전기준을 제정했다.
이 법령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모든 장애인용 리프트는 2002년 10월 18일까지 새로 제정된 안전기준에 따라 완성 검사를 받도록 돼 있다. 따라서 검사미필이나 불합격 판정이 날 경우 해당 리프트설비는 즉각 운행이 금지된다. 전국 지하철과 철도역사·관공서 등에 설치된 장애인용 리프트는 총 1700여대. 그러나 대부분이 지난 90년대 후반에 보급된 구형 설비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개보수작업 없이는 국제수준으로 강화된 안전규격을 통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정부로선 나름대로 장애인의 안전을 배려한 조치였으나 문제는 여기서 비롯됐다. 불합격 판정이 확실한 구형 리프트설비를 지하철공사·철도청측에서 아무런 대책없이 그동안 방치해 온 것이다.
◇파장은 어디로=전문가들은 10월 장애인용 리프트시설에 대한 일제검사가 예정대로 실시될 경우 90% 이상의 휠체어 리프트 운행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구형 리프트설비를 불과 50일 안에 국제수준의 안전규격에 맞추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지하철공사에서 구형 리프트 교체에 필요한 수백억원대 예산을 마련할 묘안도 없다.
서울지하철공사의 한 관계자는 “애당초 정부가 비현실적인 리프트 안전기준을 제정한 것이 무리였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궁지에 몰린 서울시·지하철공사는 산자부가 리프트 검사시한을 1∼2년 연기해주기만 기대하며 막판까지 대책없이 버티는 상황이다.
그러나 승강기안전관리원을 비롯해 장애인 리프트의 안전검사를 책임지고 있는 주요 검사기관들은 예정대로 강행할 방침이다. 안전기준에 미달할 경우 법대로 리프트 운행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결국 10월 중순이면 공공장소에서 장애인 휠체어를 운반하는 리프트설비 대부분이 멈춰서는 사상초유의 ‘장애인 교통대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탁상행정에 의한 정부 시책 때문에 130만 지체장애인의 이동권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지하철 추락사고로 장애인단체의 항의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리프트 운행마저 중단될 경우 장애인들의 분노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전망이다.
◇대책은 없나=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말썽많은 장애인 리프트를 철거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운행할 계획이다. 장애인단체의 농성을 의식한 서울시가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당장 10월부터 운행중단 위기에 처할 장애인 리프트문제에 대해선 정부나 서울시·검사기관 모두 대책없이 눈치만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교통대란을 막으려면 리프트의 설치·운행·검사 관련기관이 시급히 모여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