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저장매체는 기술의 발전이 거듭됨에 따라 용량이 크게 확장됐다. 저장기술의 발전속도는 데이터 처리속도를 능가해 적용범위와 컴퓨팅 기능의 영역을 넓힐 수 있게 해주었다. 반도체와 네트워크 기술이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는 동안 저장매체는 그보다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저장매체 기술의 이 같은 발전은 데스크톱 PC를 위한 저장매체의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저장매체 기술의 획기적인 혁신은 지난 50년대 중반 IBM 연구소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 연구소가 최초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시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초기에는 5MB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매우 무거운 24인치 디스크 50개를 사용했는데 가격은 MB당 1만달러나 됐다. 이후 기술이 급속히 발전, HDD의 용량이 증대되는 한편 규격은 축소됐다. 55∼90년 HDD의 밀도가 연간 약 25%씩 증가했다.
저장매체의 대표적인 발전계기는 82년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으로 650MB의 3.5인치 광디스크인 휴대형 CD를 개발한 때다. 하지만 광디스크는 HDD에 비해 접속시간이 늦어서 컴퓨팅 환경에서는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HDD의 접속시간이 10마이크로초(㎳)인데 비해 광디스크는 10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규격이 작고 착탈이 가능해 가전 제품에는 채용하기에 적합했다.
HDD 기술은 꾸준히 발전한 반면 광저장매체 기술은 단계적으로 향상됐다. 그후 광디스크와 HDD가 확산됨에 따라 도시바가 지난 84년 제3의 저장매체인 플래시메모리(EP롬)를 개발하고 90년대 초에 이를 착탈식 저장매체로 상용화했다. 이 저장매체는 당시 새로 부상하기 시작한 디지털 카메라, 개인휴대단말기(PDA), 스마트카드 같은 휴대형 디지털기기에 채용하기에 이상적인 솔루션이었다.
이처럼 90년대에 와서 가용 저장매체가 HDD·광디스크·플래시메모리 등 세 가지가 됐다.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디지털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저장매체 업계는 용량을 더욱 확장하는 한편 가격을 크게 낮췄다.
저장매체는 세 영역으로 나뉘어 HDD는 PC에 채용되고 광디스크는 오디오와 비디오제품,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CDR 등에 채용되는 반면 플래시 카드는 디지털 카메라와 MP3플레이어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들 세 부문 사이의 경쟁은 비교적 심하지 않은 편이었으나 각 부문 안에서의 가격 경쟁은 심했다.
특히 HDD업계의 경쟁이 치열했다. 90년에 와서 HDD업체들은 PC시장에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HDD는 가격은 플래시메모리보다 훨씬 낮고 접속시간은 광저장매체보다 더 빠르며 규격은 PC에 탑재하기에 적합해 이 부문을 지배했다. 이즈음 20개 업체가 비슷한 HDD를 공급함으로써 제품 사이의 차별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관련 업체들은 차별화의 두 주요 축인 저장밀도의 증대와 가격저하를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처음에 HDD업체들은 PC업계로부터의 수요가 많아서 이익이 크게 올랐으나 주요 컴퓨터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하고 HDD의 공급량이 확대됨에 따라 수익률이 내려갔다. PC의 판매가 연간 두 자릿수로 증가해 99년까지 1억대가 넘어감에 따라 HDD를 포함한 부품공급업체들의 수익률이 낮아졌다. 지난 90년대 중반에 1000달러 미만의 PC가 등장하기 시작해 이런 PC의 시장 점유율이 97년 30%에서 98년 50%로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HDD업계의 이익 감소로 이어졌다.
웨스턴디지털(Western Digital)의 수익률은 지난 97년 15.6%에서 98년에는 2.8%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90년대 HDD업계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HDD의 가격은 90년 MB당 4달러에서 99년에는 MB당 불과 1센트로 급격히 낮아졌다. 관련 업계는 인수합병(M&A)이 빠르게 진행돼 20개 업체에서 8개로 줄어들었다. 그 후 90년대 말에 와서 개인용비디오리코더(PVR:Personal Video Recorder)나 오디오 주크박스 같은 새로운 수요처가 생겨남에 따라 HDD업체들의 수익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지난 98년에 수익률이 2.8%로 낮아졌던 웨스턴디지털의 경우 작년 수익률이 10.6%로 올라갔다.
지난 10년 동안 저장매체 업체들은 용량 확대에 주력해 왔으나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서는 규격, 제품의 디자인, 접속 시간, 전력 소비량, 착탈 가능성, 관리의 용이성, 소비자의 브랜드 인지도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돼 제품의 차별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용량확대 노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저장매체 업체들은 가격하락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에 제품의 차별화를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가령 IBM은 직경이 1인치면서 용량은 1Gb인 새로운 HDD를 개발했고 플래시 메모리업체들은 고성능 응용제품용 메모리의 가격을 낮춰서 HDD나 광저장매체와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광저장매체 업체들도 다른 저장매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신생 광저장매체 업체인 데이터플레이(Dataplay)는 크기가 기존 제품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면서 용량이 500MB인 광디스크를 발표했다. 이 제품은 다른 광저장매체는 물론 손바닥 크기의 전자기기용 플래시메모리도 대체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제품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항은 광디스크의 소형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차별화 경쟁은 저장 형식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현재 플래시메모리에는 콤팩트플래시(CompactFlash), 시큐어디지털(SecureDigital), 시큐어 멀티미디어(Secure Multimedia), 메모리 스틱(Memory Stick), 스마트 미디어(Smart Media), 멀티미디어(MultiMedia) 등 6개의 형식이 있다. 또 광저장매체인 DVD의 판독·기록 형식에는 DVD+RW, DVD RW, DVD RAM 등이 있다.
가전제품의 디지털화와 가정 네트워크화 추세에 따라 관련 업체들이 가정 디지털 오락 환경에서 중심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게임기업체들도 게임콘솔이 가정에서 허브가 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일 이런 환경이 실현되면 HDD·광디스크·플래시카드 등의 저장매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HDD는 비디오 녹화와 비디오 클립 주크박스, 광디스크는 오디오 및 비디오 저장 보관, 플래시카드는 음악 및 사진 파일을 관리하는 데 각각 사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장매체 관리의 혁신
PDA에서부터 하드디스크비디오리코더(HDVR)나 디지털 카메라에 이르는 각종 가전·정보기기 제조업체의 관리자들은 그에 필요한 저장매체를 선택하려면 여러 가지 기술적·경제적·마케팅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제 저장매체는 종류와 형식이 다양해지고 기술도 단순히 용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자제품에 채용할 때에는 디자인 단계부터 적합한 저장매체의 종류·형식·용량 등을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 앞으로 이의 관리를 혁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지금까지 ‘관리’와 ‘혁신’은 서로 상치되는 개념으로 사용돼 왔다. 그동안 벤처자본가와 투자자들은 획기적인 기술의 개발을 통한 수익을 올리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관리자들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는 데만 급급한 결과 업계가 갑자기 무너졌다.
이 부문 업체들은 이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남아 있다. 주주들은 여전히 신제품 개발보다는 매출과 이익의 증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장매체의 수익률이 매우 낮아져서 관련 업체들의 경영이 압박을 받게 됐고 이 시장 참여가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업체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세 되자 이들 업체는 단지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신제품을 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세대 제품 개발을 위한 개발비를 효율적으로 투자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가전 및 정보기기 제조업체의 관리자들은 저장매체 업계의 상황과 기술 추세 등을 잘 파악해 저장매
체의 관리를 혁신하도록 해야 한다.
가전 및 정보기기용 저장매체 산업의 발전과정은 주로 용량의 확장과 가격 인하 노력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PC업계는 HDD의 가격 인하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고 광저장매체와 플래시메모리 업체들도 가전업계로부터 가격인하에 대한 압력을 받아왔다. 가전업체들은 제품의 저장용량이 중요해지고 저장매체 업체들이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저장매체가 제품의 순수한 가격결정 요소에서 전략적 요소로 바뀌고 있다. 또 소비자들은 저장매체의 용량은 크고 규격은 적으면서 관리하기는 더 편리한 제품을 요구하고 있는데 저장매체 업체들은 이에 부응해야 한다.
저장매체 업체들은 제품을 디자인하고 제조하는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발비용을 뽑아낼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장매체 업체들은 콘텐츠·네트워크·단말기 등을 포괄하는 가치망을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가치망 전체에 적합한 가격을 설정해야 한다. 가령 한 MP3플레이어 업체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광저장매체를 탑재하는 신제품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음반회사나 음악을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업체는 MP3플레이어의 가격을 낮추라고 압력을 가할 것이다. 따라서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제품을 개발할 때 저장매체의 기술 및 사업적 요소를 고려해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리=이규태기자 ktlee@etnews.co.kr>
<자료문의=김영우 SRI한국지사장 young.kim@sri.com>
박철호 SRIC-BI선임컨설터트 cpark@sric-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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