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광디스크 규격을 놓고 세계 가전업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충돌 직전에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소니와 필립스 등을 한편으로 도시바·NEC가 나머지로 분열된 채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규격 싸움과 마찬가지로 두 진영은 ‘밀리면 죽는다’는 식의 배수진을 치고 맞서고 있다. 서로가 내세우는 규격간 차이와 시장 판세를 비롯해 향후 세계 차세대 광디스크 표준경쟁이 어떻게 가닥을 잡아갈지 등을 전망해본다. 편집자
지난 2월 소니와 필립스 등이 차세대 광디스크 규격에 합의할 때만 해도 차세대 광디스크 표준을 향한 움직임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련 업체들은 가전업계를 ‘주름잡는’ 일본·한국·유럽 업체들이 총망라돼 있어 디지털 콘텐츠를 담게 될 차세대 광디스크 세계 표준이 나오는 데는 별 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난달 말 도시바·NEC가 새로운 규격을 들고 나옴으로써 가전·영상 등 관련 업계는 다시 한번 악몽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표준 마련이 힘들어지면서 시장마저 지지부진했던 과거 DVD표준 제정 당시가 상기됐기 때문이었다.
◇어떤 점이 다른가=두 진영 규격간 차이점은 무엇보다 기존 DVD와 호환성 및 저장용량을 들 수 있다. 두 진영 모두 단파장의 청색 레이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저장용량에 있어서는 소니·마쓰시타 진영의 규격이 27Gb로 20Gb의 도시바·NEC 규격보다 크다. 다만 소니·마쓰시타 진영 규격은 기존 DVD와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반면 도시바 진영의 규격은 기존 DVD와 호환되는데 이는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한다. 기존 라인을 업그레이드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비용 절감이 가능한 것은 물론 기존 DVD로 제작된 콘텐츠들을 그대로 옮겨 실을 수도 있다. 영화 등 콘텐츠 업계로부터 구애를 받을 확률이 소니·마쓰시타 진영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셈이다.
◇왜 경쟁하는가=당연히 차세대 광디스크 시장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 한국·일본·미국 등 세계 각국은 디지털TV 방송을 눈앞에 두고 있어 관련 제품의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차세대 DVD 수요는 기존 DVD에 비해 더 성장세가 빠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컨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경우 DVD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DVD 판매량이 비디오카세트의 판매량을 넘어섰는데 이는 VCR 보급률이 DVD플레이어의 3배 가까이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DVD의 인기를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영화들은 영화관 상영 수입보다 DVD 판매 수익이 더 많았고 나아가 일부 비디오 게임들은 DVD로 제작되고 있다. 저장 용량이 훨씬 더 늘어나면서도 고품질의 동영상·음성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매체의 인기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같은 DVD 열기가 차세대 광디스크로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치 현황=현재 소니·필립스 진영에는 마쓰시타·삼성전자·LG전자·샤프·히타치·파이어니어·톰슨멀티미디어 등 한국·일본·유럽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반대 진영에는 도시바와 NEC만 속해 있는 상황. 그러나 단순히 숫적인 비교만으로 소니 진영이 우세하다고 할 수는 없다. 도시바·NEC가 비디오 소프트웨어 및 디스크 등 매체 제작업체들로 구성된 DVD포럼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 규격 발표 전부터 소니 진영에 발을 딛고 있는 일부 업체 가운데는 ‘다른 표준을 기대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관계자들도 있었다.
결국은 시장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 성공 요건은 단순히 기술력만도, 편의성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제품화가 오는 2005년에나 이뤄질 전망이고 보면 ‘두 진영간 대타협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고 일부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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