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DVD시장 격돌>(하)

 차세대 광디스크 표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벌이는 소니·필립스 진영과 도시바·NEC 진영간 힘겨루기에 대해 업계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선 규격 논쟁이 소모전으로 흐르면서 업체들 스스로 힘이 빠지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 업계 관계자들과 소비자들은 두 진영의 규격 경쟁이 ‘저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차세대 광디스크 표준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소비자들은 구매를 늦출 수밖에 없다. 유럽 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진영간 대립에 소비자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면서 “기존 DVD가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표준도 확정되지 않은 차세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비자들은 “DVD리코더 표준경쟁에서도 신물이 났다”면서 “유사한 우를 차세대 DVD 분야에서 범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 상호 비난도 위험수위 = 두 진영은 상대방 규격에 대해서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니·필립스 진영은 도시바 측이 밝히는 기존 DVD와 호환성 강조가 어불성설이라는 분위기다. 필립스의 관계자는 기존 DVD와 호환성이 있다는 도시바의 주장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양쪽 제품이 모두 청색 레이저를 광원으로 하고 있어 현재 DVD와 호환성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도시바 진영이 호환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복잡하게 얽힌 차세대 광디스크 특허와 관련, 경쟁 업체들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소니·필립스 측은 또 호환성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제품이 호환성을 갖고 있어 기존 장비를 이용해 생산비를 줄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 100% 성장이 예상되는 차세대 광디스크 시장은 엄청난 규모의 신규 장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존 장비의 재사용에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 과연 표준 경쟁인가= 따라서 업계에서는 양 진영을 주도하는 업체들이 차세대 광디스크 규격을 이익을 위한 ‘볼모’로 잡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업체들이 기술력이나 소비자를 감안한 사용 편의성보다는 ‘로열티를 위한 로열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가전 업체들은 DVD를 제작해 판매할 때마다 특허보유 업체들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실제 규격을 주도하는 소니·필립스·도시바·톰슨 멀티미디어 등은 연 수억달러를 로열티로 챙기고 있다. 표준화보다 표준 채택 과정까지를 즐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 제3 지역의 움직임 =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규모 업체들의 로열티 부과에 지친 일부 국가에서는 별도의 규격을 들고 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과 대만 업체들은 DVD관련 기술료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포맷을 만들기로 했다. 대만의 19개 DVD 제조업체는 중국 업체들과 협력해 새로운 DVD 포맷인 EVD(Enhanced Versatile Disc)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중국의 광디스크 표준으로 부각되고 있는 EVD는 기존 적색 레이저 기술에 기반을 두며 단면 단층 디스크는 6Gb, 단면 양층 디스크는 11Gb의 용량을 각각 제공한다. 중국 대만 업체들은 연내 이 규격을 사용한 디스크와 플레이어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목표다.

 <> 대타협의 가능성 = 최근 들어서는 두 진영간 경쟁이 과거와 같이 격렬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도시바 측도 “두 진영이 마냥 경쟁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한가지 규격이 표준이 되면 나머지는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체들이 마지막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DVD 속성상 서드 파티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고 이 경우 1차 소비자인 영화나 게임 등 콘텐츠 업계가 결정적 권한을 쥐게 될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톰슨 멀티미디어의 쟝 샤를 아우어케이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결국 시장 성공여부는 영화 등 콘텐츠 업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