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업계 `빛과 그림자`

 국내 소자업체들을 대상으로 시장기반을 다져온 장비업체는 호경기를 맞은 반면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는 업체는 불황에 시달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국내 소자업체들이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해외 소자업체들의 대부분은 설비투자 축소에 나서면서 국내 소자업체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장비업체는 지속적인 매출확대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신규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조사 전문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세계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를 당초 지난해 대비 15% 가량 감소에서 22% 감소로 감소폭이 확대되는 등 반도체 장비시장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우리나라 설비투자 규모는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의 공격적인 투자에 힘입어 지난해 대비 평균 15% 이상 증가하는 등 다른 나라의 제조업체들과는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장비 내수시장의 호황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케이씨텍·아토·유니셈·오성엘에스티·태화일렉트론·파이컴 등 국내 수요업체를 대상으로 시장기반을 착실히 다져온 장비업체들은 올들어 괄목할 만한 매출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4분기에도 매출호조를 낙관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올해 반도체부문에만 4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삼성전자와 차세대 LCD 분야에 1조2000억∼1조4000억원을 투자하는 LG필립스LCD를 효율적으로 공략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최소 30%에서 최대 200% 이상의 매출신장률을 기록중이다.

 더욱이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6조원 가량을 신규투자할 가능성이 높아 이들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한 장비업체들은 당분간 매출호조세를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이에 반해 지난해를 기점으로 매출구조를 내수 위주에서 수출 위주로 변경하면서 국내 소자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거나 회사 내부 사정으로 인해 국내 소자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한 장비업체들은 큰폭의 매출감소로 고전하고 있다.

 전공정장비 개발업체 A사의 경우 연초 해외시장 진출 가속화를 선언하면서 전년 대비 60% 가량 신장한 800억원대의 연간 매출목표를 세웠으나 해외 소자업체들의 투자위축 영향으로 지난 상반기 매출은 50억원 미만으로 전년 동기 대비 90%나 감소했다.

 또 다른 전공정장비업체 B사는 20% 미만이던 수출비중을 올해 최대 5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 아래 미국과 아시아권 국가 공략에 나섰지만 수출대상업체들의 투자연기 및 축소 결정에 따라 해외수주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900억원 가량으로 예상했던 연간 목표를 지난해 수준 이하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검사장비업체 C사도 올들어 수출계약을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업계는 국내 소자업체의 투자확대 영향으로 내수시장 여건이 매우 좋아진 반면 수출시장은 더 악화돼 호황과 불황이 병존하는 특이한 상황을 맞고 있다”며 “수출에 주력해온 장비업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극심한 불황을 면할 길이 없어 내수 호황기중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