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만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는 급박하게 변화했고 특히 경제분야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가뜩이나 휘청거리던 세계경제가 테러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특히 거품이 사라져가던 정보기술(IT)부문은 테러로 인한 피해가 어느 부문 못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다시는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세계경기가 소생기미를 보이고 있고 IT분야 역시 꿈틀거리며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IT 각 부문에서 투자가 늘고 있으며 기업들의 경영활동 역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9·11테러 1주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테러와 미국의 보복전쟁이 국내외 IT업계에 미친 영향과 시장 전망을 4회로 나누어 살펴본다. 편집자
오전 8시 45분. 미국 동부 뉴욕 상공을 날던 아메리칸에어 소속 제11편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빌딩을 들이받았다. 이어 9시 3분. 첫번째 충돌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유나이티드에어 제175편 항공기가 남쪽 빌딩에 부딪혔다. 18분 차이로 일어난 일련의 충돌로 인한 사상자는 5000명을 헤아렸다. 110층 규모의 건물에서 연이어 터져나온 굉음은 테러가 야기할 세계경제의 폭락의 예고하는 듯했다. 당장은 매일 10조달러에 달하는 돈이 움직이는 뉴욕증시가 폐장됐고 사건소식이 세계로 타전되면서 세계 산업계에는 찬물이 끼얹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소비지출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간신히 목숨만 유지하던 세계경제는 암흑기로 빠져들었다. 세계 규모의 공황마저 예감되는 시점이었다. 특히 닷컴침체로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세계 IT업계가 느끼는 참담함은 어느 산업부문보다 컸다. 간신히 회복기미를 보이던 IT투자는 테러로 완전히 얼어붙었다.
부시 행정부가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지만 자국 경기를 살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테러로 WTC와 미 국방부 건물이 파괴됨으로써 발생한 직접적인 재산피해는 160억달러, 인명손실과 부상으로 인한 손실액은 50억달러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 210억달러는 2000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0.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IMF는 “장기적인 경제손실은 산출하기 힘들 정도”라면서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회복도 훨씬 늦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인한 격앙된 분위기는 세계경제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웠다.
특히 IT경기는 다시 밑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2001년 미국기업들의 IT투자는 마이너스 12% 성장하는 등 10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투자과잉 상황에 테러가 겹치면서 지출이 줄어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었다.
테러와 보복전쟁의 파장은 미국을 넘어 중남미와 인도 등 아시아로 확대됐다. 미국의 경제권 안에 있는 멕시코·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중남미 각국 역시 수출에 타격을 입거나 금융혼란으로 빠져들었고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미국 의존도가 컸던 인도는 IT산업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이런 와중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테러가 단기적으로는 미국 IT산업의 발목을 잡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산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초래하면서 보안·시스템통합(SI) 등 일부 분야에서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실제 테러로 폐허가 된 IT인프라 복구수요가 일면서 몇몇 컴퓨터 업체들과 통신·네트워크 업체들이 호황을 맞았다. 또 사회 전반에 보안개념이 확산되면서 보안, 재해복구·백업 업체도 각광을 받았으며 화학테러 우려로 잠깐의 소강상태를 보이던 온라인 쇼핑도 크게 늘었다.
테러를 계기로 각국에서는 물리적 테러나 사이버테러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미국정부는 ‘국토안전보장부’ 설립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민간기업들은 비상경영에 대한 마인드를 넓혀갔다. 특히 기업 최고경영자간 긴급 연락망인 ‘CEO링크’ 구성이 본격화됐다.
이제 긴박했던 순간이 1년 가까이 지나면서 격앙됐던 분위기도 가라앉고 세계경기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계 경기회복은 일정 부분 미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국방부문에 대한 투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IT투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민간에서는 앞서 말한 보안·백업 분야를 비롯해 통신·네트워크 분야, 호스팅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IT업계에서는 불행스럽게도(?) ‘제2, 제3의 테러’ 위협이 상존하는 한 이들 분야에 대한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