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부품업계>(9)에필로그(끝)

 인쇄회로기판(PCB)업체 휴닉스와 필름콘덴서업체 고려전기를 지켜보는 부품업체들의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양사 모두 70년대 초 설립돼 30년 가까이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했으나 결국 경영악화로 최근 화의신청과 지분매각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의 현재 모습은 ‘한국 부품산업의 미래’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심정은 더욱 착잡하다. 조정대 필코전자 회장은 “상당수 업체가 경기 불황과 맞물려 세트업체의 공급단가 인하압력으로 사업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채산성이 악화돼 전업 내지는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국내 전자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있어 그간 혁혁한 공을 세웠던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최근 자생력을 잃고 조만간 사라질 것이란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이는 전자산업의 동반 쇠락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품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면 세트업체의 경쟁력 상실은 불 보듯 뻔하다. 안정적인 납기를 보장받지 못하고 우수 부품 공급처를 잃게 되며 가격견제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의 한 관계자는 “현 시장경쟁 체제에서 중국 업체가 저가 전략을 집중적으로 펴는 것도, 일본 업체가 가격을 낮춰 공급하는 것도 국내 업체가 존재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세트업체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부품업체와 세트업체간의 이같은 역학관계를 감안, 업계의 공통적인 애로사항을 도출해내는 ‘협력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기술집약적인 제품개발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당연히 도태돼야 하겠지만 세트업계의 과도한 단가 인하압력은 조속히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적극적이고도 체계적인 전자부품 육성책 마련도 절실하다. 특히 전자부품산업은 평균 부가가치가 세트산업(31.23%)에 비해 훨씬 높은 33.87%에 달할 정도로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물론 정부는 매년 ‘선택과 집중’ 대상 품목을 전략적으로 발굴하고 있지만 부품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이 절대 과소평가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현재 D램과 LCD 등 일부 부품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세계적인 강국으로 도약했다. 마찬가지로 PCB·수동부품·2차전지 등 일반부품류도 정부가 애정과 관심을 갖고 꾸준히 육성한다면 얼마든지 ‘제2의 간판 수출품목’으로 도약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은 시각이다.

 부품업계와 세트업계의 협력체제 구축도 아무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대목이다. 특히 세트업체와 부품업체가 공동으로 고부가 제품 개발에 나서 부품업체는 수요와 투자비 회수를 보장받고 세트업체는 특성에 맞는 우수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등 ‘윈윈모델’이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품업계 스스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구노력이 가장 절실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중국(가격)과 일본(품질)의 협공 속에서 우리만의 국제 경쟁력을 회복, 어떤 환경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노력이 지금보다 훨씬 배가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