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는 이미 지난 80년대부터 그의 저서 ‘메가트렌드’를 통해 아시아경제의 잠재력을 이같이 전망했다.
‘세계화’와 ‘지역주의’. 상반되는 이 두 개념은 오늘날 세계경제 질서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특히 지역주의는 경제블록을 결성하는 형태로 권역별 경제통합을 급속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이는 21세기 한국의 청사진이 아시아, 더 정확히는 동북아의 미래와 그 맥을 같이함을 의미한다.
최근 국제통화금융(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으로 5조7295억달러. 이는 전세계 GDP의 18.5%에 해당된다. 한·중·일의 경제적 비중은 유럽연합(EU)의 30%, 북미자유무역협정기구(NAFTA)의 35.2%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동북아가 세계경제의 차세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중국을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성장동력 때문이다. 중국의 노동·소비시장, 일본의 자본과 기술, 한국의 지경학적 위치와 특유의 IT 파워가 시너지를 발휘할 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닐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상태다.
특히 동아시아 경제권이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 서구 경제권은 견제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수출비중은 2000년 27.2%에서 오는 2020년이면 35%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치는 EU(29.6%)와 NAFTA(13.6%)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바야흐로 동아시아권은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으로 자리매김하게 됨을 의미한다.
동북아경제의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다. 동북아 지역의 허브(거점) 확보를 위해 우리의 구체적 실천계획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다. 김재철 무역협회장은 “한·중·일 3국의 역내교역 비중은 20%가량에 불과한 실정으로 최근 5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며 “이는 EU 역내교역 비율이 63.5%에 달하는 것과 비교할 때 아직까지 크게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중국과 일본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아세안과 손잡고 광동성과 홍콩·마카오를 잇거나 중국 본토와 홍콩·대만·마카오 등 4대 중화권을 엮어 이른바 ‘화교경제권’을 형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이들 지역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뒤 우리와 일본을 끌어들인다는 복안이다. 일본 역시 최근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데 이어 멕시코와도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21세기는 세계와 국가 사이, 즉 국가보다는 크고 세계보다는 작은 ‘국가연합체’의 형성이 가속화될 것이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이같은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가깝고, 인종적으로도 유사해 공동작업이 용이하다. 이는 곧 경제적 통합은 물론 정치적 화합까지 가능케 한다. 일본은 대대적인 조직혁신이 필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중국도 장기적 관점의 산업자본 유치가 절실한 실정이다. 한국 역시 IMF의 급박한 유동성 위기는 탈출했다고는 하나 경제적 불안요인은 여전히 잔존해 있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동북아 허브 확보전략에 있어 가장 큰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R&D”라며 “IT 등 신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이 동북아의 R&D 허브를 맡고,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해당 제품의 제조를 넘기는 방식의 협업모델이 현단계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한·중·일 IT협력 표준화 가장 먼저 ■
한·중·일 3국은 전통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체제에 익숙하다. 서로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국제경제 무대에서의 경쟁국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정보통신 부문에 관한한 3국간 협력은 각국의 경쟁력 향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며, 특히 전자상거래의 촉진은 역내교역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IT분야는 철도·운송·에너지 등에 비해 정치·안보적 고려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는다는 점에서 동북아 3국간 협력의 주요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IT협력의 주체가 민간기업이 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문제점=현재 전자산업을 비롯한 3국간 IT협력체제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분업체제에 기초하고 있다. 중국은 저임의 인력과 막대한 시장잠재력, 일본은 높은 기술력, 한국은 중간 기술과 생산능력 등에서의 비교우위를 활용한 분업체제다. 이는 협력주체의 서열화를 야기, 당사국간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이밖에 외국 상품과 기업에 대한 규제의 철폐도 3국간 협력을 가로막는 주요인이다.
◇협력방안=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IT부문에서 3국이 가장 먼저 협력을 시도할 수 있는 분야는 ‘표준화’라고 분석했다. 특히 2010년경 상용화될 제4세대 이동통화방식에 대비, 우선 3국간 기술개발을 통한 표준화를 제정해야 한다. 이는 전세계 표준화 설정에 있어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3국간 정보교류의 증대는 대규모 광통신망의 확충을 필요로 한다. 특히 중국의 전화보급률을 볼 때 한·중·일이 함께 유무선 국제통신망을 구축, 3국 기간사업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할 수 있다.
IT분야는 동북아 3국이 모두 만성적 인적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분야다. 따라서 △3국간 IT연수과정 개설 △한·중·일 공동 사이버대학 설립 △3국간 공동 인증 IT자격증제 도입 등을 통해 상호간 ‘IT 휴먼 네크워크’를 공고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균형잡힌 협력관계 지속 中·日 산업 틈새 활용을 ■
동북아 헤게모니 쟁탈전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시장에 미치는 중국의 입김은 경제분야를 뛰어넘어 정치·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특히 지난해 중국은 베이징올림픽 유치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라는 해묵은 숙원을 일거에 해결하는 쾌거를 이뤘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WTO 가입으로 0.5%포인트 이상, 올림픽 유치로 0.3%포인트 이상의 추가적인 경제성장효과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7∼8%대의 고도성장을 지속, 동북아는 물론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얼마전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글로벌 트렌드 2015’라는 전망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향후 13년간 연 7%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한다면 오는 2015년경 중국의 GDP 수준은 미국에 근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같은 중국의 급부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중수교 이후 지난 10여년간 우리는 대중국 진출에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리적인 인접성과 거대 소비시장이라는 점만을 믿고 중국시장에 진출했던 대다수 우리 기업들은 냉철한 대중국 분석과 정보에 어두운 실정이다.
우천식 KDI 장기비전팀장은 “중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지속성장면에서 만큼은 최소한 중국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고 말했다. 고도성장 시절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국영기업의 부실, 갈수록 심해지는 소득격차 등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지정학적 위치와 산업적 틈새를 활용, 이들 국가와의 균형있는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KDI는 ‘한·중·일 경제협력의 추진방안’ 보고서를 통해 “중국과 일본은 경제·외교적 측면에서 우월적 지위를 활용, 우리와의 관계 정립시 양자적 접근을 선호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들 초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자간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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