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한국개발원(KDI)이 내놓은 ‘비전 2011’이 국가 미래상의 제시를 통한 범사회적 공감대 형성용이라면, 산업자원부 등 각 정부부처가 제시하는 중장기 미래 비전이나 기본계획 등은 일종의 실천전략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e비즈니스와 같이 일부 유사과제에 대해 각 부처가 각기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유기적 통합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정부 부처가 공식 발표하는 비전은 해당 산업의 미래와 발전모델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번 산자부의 산업발전 비전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는 김도훈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은 “미래 경제·산업이 복잡·다기화됨에 따라 중앙 부처의 역할이 축소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장기 계획일수록 정부가 제시하는 비전은 일선 업계와 관련 종사자에게 일종의 ‘로드맵(Road Map)’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산업자원부를 비롯해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 우리나라 미래산업과 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 부처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통해 분야별 청사진을 조망해 본다. 편집자
◇2010년 산업발전 비전과 전략=지난 7월말 산자부는 전경련 등 재계와 공동으로 한국 산업의 세계 4강 실현전략을 담은 중장기 산업비전을 발표했다.
이 비전에 따르면 오는 2010년까지 디지털전자산업은 세계 2위, 반도체는 빅3 국가로 육성하겠다는 게 산자부의 계획이다. 오는 2010년까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선진 7개국(G7) 수준으로 확대되고,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주력 전통산업과 신산업 분야의 200개 핵심 전략기술 개발에 3조원이 투입된다. e비즈니스화를 정착시켜 전자상거래 규모를 전체 거래의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산자부는 특히 내년부터 2006년까지 나노공정·한국형IC·포스트D램 등을 개발하는 ‘시스템IC-2010’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차세대 디지털컨버전스 플랫폼 등 매년 2개 이상의 핵심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e코리아 비전 2006=지난 4월 정보통신부는 오는 2006년까지의 정보화정책이 담긴 제3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안인 ‘e코리아 비전 2006’을 확정·발표했다. 이 계획안에는 향후 5년간 진행될 국가정보화의 청사진이 담겨있는 셈이다.
이 계획에서 정통부는 5년간 민간 50조원, 정부 24조원 등 총 74조원을 정보화촉진에 투자한다. 또 IT산업 발전을 위해 올해만 2조900억원을 투입하며 디지털사회화에 대응해 전자금융거래기본법 등 29개 법령을 연내 제·개정할 방침이다. 또 정통부는 50개 업종에 대한 B2B 네트워크를 구축해 현재 4%인 핵심 산업의 전자거래율을 30% 수준까지 끌어 올리기로 했으며 온라인 인증마크제도도 활성화해나가기로 했다. 공공 부문에서는 현재 54종에 불과한 온라인서비스를 올해 말 400여종으로 확대하고 2006년께엔 모든 업무로 확대할 방침이며 모바일 정부 기반 구축, 전자투표제 등도 도입한다.
이밖에 인터넷주소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IPv6로의 전환, 세계은행과 공동으로 IT교육협력센터의 국내 유치 추진, 이동통신·온라인게임·디지털TV 등 50대 수출 유망 품목의 집중 육성 등이 추진된다.
◇과학기술기본계획 2002∼2006=과학기술부는 이미 지난 연말 대통령 주재로 열린 과기위원회에서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심의, 확정했다. 국가 과학기술의 비전을 제시하는 이 계획은 과기기본법에 의거해 5년마다 수립하게 돼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과기부는 앞으로 5년간 미래유망 신기술과 기초연구·공공복지분야 등의 연구개발에 35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 가운데 13조원은 정보기술(IT)·생명기술(BT)·나노기술(NT) 등 6개 차세대 전략기술(6T)분야에 집중 투자된다. 특히 BT발전의 기반인 기초의과학을 육성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800억원을 투입하고 기초과학 연구에 투입되는 연구예산을 올해의 17% 수준에서 오는 2006년까지 20% 이상으로 확대키로 했다.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정부 연구개발 중 기초연구비율을 오는 2006년까지 20% 이상 확대하는 한편 대학내 순수기초분야의 첨단기초연구소를 30개 가량 신설한다. 또 2007년까지 정부 예산 5조1620억원을 투자, 유전체·프로테옴·시스템생물학 등 미래대비형 신기술분야와 생명공학을 중점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농업과 BT를 접목,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5개 농업생명공학분야 핵심사업을 선정하고 오는 2010년까지 7000억원을 투자, 농업생명공학기술 수준을 현재 세계 10위권에서 5위권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과기부의 장기 목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기고:한국산업의 총사진과 정부 역할-김도훈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사진)■
한국의 산업이 발전해 나가야 할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키 위한 산업자원부의 중장기 프로젝트인 ‘2010 산업비전과 발전전략’에 참여해 정책당국자, 관련 전문가 그리고 일선 업체 관계자들과 많은 논의를 거쳤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분출된 다양한 목소리을 과연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우려는 결국 두가지로 압축됐다. 하나는 ‘향후 10년간 한국산업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대표산업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였으며, 또 하나는 ‘과연 산업발전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였다.
현재 한국산업이 경쟁력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은 대다수 일반국민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팽배하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주력산업들이 대부분 구조전환을 강요당하고 있다. 또 선진국들은 기술개발을 가속화하면서 신산업 및 주력산업의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계속 앞서 나가는 한편, 중국을 필두로 한 후발공업국들의 추격도 날로 거세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향후 10년간의 주력 대표산업들이 무엇이 돼야 할지에 대해 자신있는 답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은 모든 산업들을 살려 나가는 것을 해답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즉 기존 주력산업들과 미래의 전략산업들은 물론, 여기에 제조업 관련 서비스산업까지 이른바 3대 산업군을 모두 발전시켜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발전전략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기존 주력산업들의 중요성을 미뤄 보아 이들 산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신산업의 발전에만 주력하는 것은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아 왔던 우리의 경쟁력 요소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3대 산업군의 발전전략이 무작정 모든 산업들을 똑같이 끌고가자는 식의 단순한 제안은 아니다. 기존 주력기간산업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생산능력 확장 방식의 발전전략은 버리고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새로운 기술과 공정의 도입을 통해 산업별로 치열한 구조고도화 노력을 기울여야 중국 등 후발공업국의 공세를 이겨내며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래 전략 산업의 경우에는 결국 기술을 선점한 자가 시장의 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은 수의 분야에서라도 선진국과 대등한 기술 수준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이들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전문화·대형화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3대 산업군의 발전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산업이 추구해온 노동과 자본 투입 위주의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모든 분야에서 혁신해 나가는 혁신주도형 산업발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 발전 청사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정부가 이러한 산업발전을 위해 무슨 할 일이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먼저 이같은 산업발전의 청사진을 정부가 제시해준다는 것 자체가 민간기업들에게 도움이 된다. 가뜩이나 자신감을 잃고 있는 기업들에는 정부, 기업 그리고 전문가들 모두의 머리를 맞대어 제시한 이러한 산업비전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게 해주는 산업지도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다음으로, 세계 모든 경쟁국들이 자국의 기업환경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는 한편 자국기업들이 마음놓고 글로벌경쟁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국내외 기업들의 사업환경을 경쟁국 수준만큼은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혁신주도형 산업발전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을 위한 자금과 인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인데, 이러한 자금과 인력의 원활한 수급을 도와주는 과정에서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기술선점을 위한 혁신과정에 들어가는 자금과 인력의 양과 질이 개별기업 차원에서 부담하기에는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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