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새로운 20년-벤처

 ■IT코리아의 `첨병` ■

지난 2000년 여름, 한국 벤처업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던 이민화 메디슨 전 회장은 벤처기업CEO들을 대상으로 ‘21세기 100년 기업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 중 오직 GE가 1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국내기업의 경우 생명력은 더욱 짧다. 지난 93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 30대 재벌기업 중 13개 기업이 망했다. 7년 생존율이 57%에 불과한 셈이다. 벤처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벤처 이전의 벤처로 불리던 큐닉스컴퓨터와 광림기계, 수산중공업, 태일정밀 등은 한차례의 위기를 겪었거나 지금은 거의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들이다.

 이처럼 기업은 내적·외적 요인들로 인해 100년을 생존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며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변인들이 작용하는 현재의 상황은 더욱 그렇다.

 당시 이민화 전 회장은 ‘사람은 죽으나 인간은 연속하다’ ‘기업은 망해도 경제활동은 계속된다’ ‘세포는 죽어도 사람은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그가 주장하던 벤처연방제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왔던 표현이다. 벤처연방제의 성공 여부와 타당성을 이제와서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의 말에서 한가지 진실을 유추해낼 수는 있다.

 ‘벤처기업은 망해도 벤처는 영원하다’는 진실이다. 개개의 벤처기업은 흥망성쇠를 거듭할 수 있고 ‘벤처’라는 말은 변할 수 있지만 신경제의 첨병으로 부상했던 벤처산업은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벤처는 영원하다’는 말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우리경제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벤처기업이 2년 넘게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벤처 대표주자들이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으며 붐이 일어났을 때 창업했던 많은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각종 비리사건이 시장에 대한 불신을 초래, 지난 99년 초부터 2000년 3월 사이에 8배 이상 폭등했던 코스닥내 벤처지수는 최고점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에 따라 코스닥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크게 위축됐다. 아울러 벤처캐피털과 엔젤들의 투자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렵게 형성되던 벤처 네트워크도 상당수가 붕괴됐다. IT벤처의 집적지로 불리던 테헤란밸리를 탈출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벤처 지주회사를 지향하던 메디슨·골드뱅크·다우기술 등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 계열사를 대폭 정리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벤처에 대학 정부의 육성의지와 언론과 일반인의 관심이 모두 실종되고 우리의 고질병인 냄비 근성이 또한번 여지 없이 발휘됐다.

 이같은 위기의 근본 원인은 버블 형성에 따른 왜곡과 도덕성 훼손이다. 그러나 이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속에서도 희망은 싹뜨고 있다. 벤처는 영원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근거다.

 따라서 현 상황을 대세 상승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골짜기로 판단해야 하며 당연히 지나친 패배주의는 금물이다.

 10년 이상 축적된 산업기반과 창업자 풀은 벤처의 지속적인 상승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오히려 침체로 인해 옥석이 가려지고 체질이 탄탄해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기술력 있는 제조기반 벤처와 수익모델이 확실한 벤처들은 오히려 발전기회를 맞고 있으며 우량 벤처들에는 여전히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 네트워크 등의 분야에서는 원천기술을 탐색하고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 노력을 통해 글로벌 수준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튼튼해진 ‘벤처 클러스터’는 우리 경제의 든든한 축을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벤처기업들은 현재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사업전환, 특화기술로 승부,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며 위기상황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독불장군처럼 굴던 벤처기업들은 벤처 커뮤니티 형성, 대기업과 벤처기업 파트너십을 통해 공존을 추구하고 있고 벤처캐피털 내실화 및 벤처문화 정착 등의 인프라도 개선되고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벤처 침체기의 희망의 싹이다.

 벤처는 어려운 여건 아래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이번 ‘벤처겨울’은 체질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벤처 비리를 문제삼거나 주가 폭락에 실망하는 것은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벤처 버블이 비정상적이었고 기술력이 있는 벤처기업에는 현상황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진정한 벤처는 온실이 아니라 들판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때다. 벤처 CEO들은 ‘압축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고 ‘압축실패’로부터는 학습을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기술혁신에 매진하여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차제에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경영방식을 초국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글로벌 플레이어’를 목표로 진정한 벤처정신으로 무장할 때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마이크로소프트 변신에서 배운다 ■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다각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00년 6월 닷넷(.Net) 전략을 발표한 이래, 소프트웨어의 서비스화라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나아가 PC 기반 소프트웨어라는 전통적인 사업 영역을 넘어 X박스 게임기, 포켓PC PDA, 스팅거 스마트폰, 태블릿 PC, 미라, MSN TV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영역을 넘어 하드웨어,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신 성장 전략에서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많은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첫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기나 PDA 같은 하드웨어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신 사업영역의 진출에 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 과정을 혼자 힘으로 수행하기 보다는 강점에 집중하고 부족한 역량은 아웃소싱이나 전략적 제휴 등 분야별 강자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숨겨진 파이를 찾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PDA 분야에서 염두에 둔 것은 PDA 판매가 아니라 PDA 운용체계나 기업용 서버 프로그램이다. 신 성장 사업으로 각광받는 분야들은 대개 과잉기대와 참여기업 증대로 개별 기업에게 돌아오는 파이가 적다.

 오히려 매력적인 사업 기회는 지적재산권, 부품, 장비, 소프트웨어 등 관련 분야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 사업 영역에 진출할 때 자신의 역량으로 접근 가능한 숨겨진 사업 기회가 없는지 먼저 탐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 플랫폼 비즈니스를 추구해야 한다. 플랫폼은 원래 다른 프로그램이 구동 가능한 공통 기반을 의미한다. 플랫폼 비즈니스란 결국 다른 사업이 추진될 수 있는 기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부품이나 기술 또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포스트PC 제품별로 플랫폼을 제시하여 다른 기업들이 이를 기반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게 만들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일단 시장의 지지를 얻게 되면 수익성이나 성장성 등에서 최종 제품의 생산·판매보다 훨씬 매력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은 대개 최종 제품을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신의 부품이나 기술을 발전시켜 플랫폼 비즈니스로 사업모델을 고도화시킬 방안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끊임없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변신에서 국내 벤처기업들은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 끊임없는 도전이 없는 벤처는 벤처가 아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기고:벤처인에 바란다-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사진) ■

“신 기술을 무기로 참신하게 시작한 벤처기업들이 ‘펀드매니저를 동원해 주가를 올려주겠다’ ‘신주인수권을 발행하여 돈도 벌고 지분율도 높이자’는 브로커들 때문에 돈놀이에 맛을 들이게 된다. 마침내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은 뒷전이고 오로지 주가등락에만 일희일비하는 머니게이머로 전락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느 벤처기업인의 전언이다.

 “벤처 붐 이전의 벤처기업인들은 순수했다. 그들은 대기업 조직문화가 싫거나 자기 일을 하고 싶어서 창업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처 붐 이후 창업한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게 최대의 목적인 사람들이다. 당연히 후자는 태생적으로 모럴해저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견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보는 벤처붐 세대 CEO들에 대한 평가다.

 이같은 현재의 상황은 이제 자사가 진정한 벤처기업인지, 자신이 진정한 벤처기업인인지를 자문해 봐야 할 시점임을 말해 준다.

 1만여개의 벤처기업 중 자생력을 갖춘 기업은 5% 정도라는 게 정설이다. 70%는 무늬만 벤처고 이중 일부는 오히려 벤처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존재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벤처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떠나기 싫으면 스스로가 벤처다움을 회복하는 데 주력해라.

 벤처기업인은 꿈과 열정을 갖고 남들은 어리석다고 비웃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인텔의 회장 집무실 크기가 다른 직원의 방과 같고, 회장 전용 주차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벤처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점을 벤처기업인은 다시 되새겨야 한다. 창업 초기의 초발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벤처는 글로벌을 지향하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해야 한다.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모델, 국내 제일의 수준만으로는 앞으로 자금조달조차 어려울 것이다. 글로벌 벤처를 벤치마킹하고 글로벌 벤처기업으로서의 요소를 조속히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는 것이다. 단 기술적 우월성이 아닌 상업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와 함께 핵심기술은 진화한다는 개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사의 핵심역량과 관련된 기술의 세계 동향을 파악, 보유기술이 항상 시장트렌드 안에 위치하도록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창업초기의 핵심기술까지도 시장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벤처의 최우선 과제는 자사 시장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성공벤처나 성공 CEO는 지분율을 낮추고 시장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조직 내에서는 자신이 모든 것을, 시장에서는 자사가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절대악이다.

 회사의 시장가치 증진을 위해서라면 내적으로는 직원들과 외적으로는 대기업, 심지어는 경쟁사와도 적과의 동침을 감행, 윈윈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비우면 바로 그 순간, 성공의 작은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