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불황 탈출 도울 `기대주` ■
‘시스템온칩(SoC)이 디지털 퓨전 시대를 앞당긴다.’
지식 빙뱅의 시대를 맞고 있는 지구촌은 물질과 관념, 전통과 첨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모든 분야에서 ‘컨버전스(융합)’라는 거센 변화의 파고를 넘고 있다. 이제 더이상 이분법적인 분류나 정의는 의미가 없다.
제3의 물결로 일컬어지는 정보혁명의 주요 동인의 하나인 정보기술(IT)은 단순히 기술적인 차원을 넘어 인간과 문화를 포괄하는 새로운 차원의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디지털 퓨전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가장 밑단에 SoC가 자리잡고 있다.
21세기 IT분야의 최대 화두로 등장한 SoC는 다양한 디지털기술과 제품간 융합되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핵심기술로 기존의 전자제품과 인터넷·방송·무선통신 등이 결합돼 인간지향의 정보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SoC는 반도체 제조공정 기술의 발전으로 고집적도 구현이 가능해짐에 따라 하나의 칩에 프로세서·메모리·주변장치·로직 등 시스템 구성요소를 통합한 것이다. 더이상 메모리와 비메모리라는 영역구분이 의미가 없어지고 ‘반도체가 시스템’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셈이다.
이제 PDA·휴대폰·셋톱박스·DVD·HDTV 등 각종 디지털 정보기기에 사용되는 수많은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해 시스템을 구현함으로써 원가절감은 물론 소형·경량화가 가능해져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유기체적인 통합기능 제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트랜지스터→집적회로(IC)→대형집적반도체(LSI)로 발전해온 전세계의 반도체기술과 시장은 SoC산업을 차세대 핵심 주력분야로 선정하고 시장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전체 반도체산업 매출은 32% 정도 줄어들며 상당한 불황을 겪은 데 반해 영국의 ARM·MIPS테크놀로지스 등 SoC 업체들의 매출액이 8억9200만달러로 25%가 늘어난 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결국 SoC가 반도체산업의 역학구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이자 불황의 돌파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인텔·TI·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선도 업체들은 고집적도의 SoC 제품 개발에 착수, 올해 하반기 중 상용화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TSMC·UMC 등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들도 초고집적 SoC 개발을 위한 90㎚급 공정기술을 개발하고 내년부터 본격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퀄컴의 모바일스테이션모뎀(MSM)을 필두로 TI의 이동전화단말기 솔루션인 OMAP, 필립스·LSI로직·시러스로직 등이 내놓은 DVD플레이어 및 리코더용 SoC 등 이미 제품화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SoC는 CPU와 DSP·메모리 등 시스템 구성에 필요한 기본요소들을 모두 탑재, 초소형·고집적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인텔이 곧 선보일 3세대 휴대형 데이터통신기기용 SoC가 그 첫 물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선두 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사실상의 시장선점이나 기득권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메모리·비메모리·파운드리 등으로 시장을 분할해 거대 진영을 이루고 있던 반도체 산업간, 그리고 각종 문화와 산업간 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요구되는 SoC 개발의 특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은 새로운 출발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미국과 일본 주도의 산업구조 하에서 대량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해온 국내 관련 산업의 위상과 역학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온다. 이미 우리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고 초고속정보통신과 이동통신의 활성화된 국내 IT산업 인프라로 SoC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매우 높게 인식되고 있다. 또 SoC분야는 메모리와는 달리 제조 인프라가 열악한 중소벤처 기업도 우수한 설계기술을 확보해 산업전반에 미치는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물론 산·학·관·연을 아우르는 투자와 지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해야 하는 전략분야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국내 업체들은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종합반도체업체, 아남반도체·동부전자·나리지온·타키온스 등 파운드리업체, 에이디칩스·다믈멀티미디어·MCS로직·TLi 등 토종 벤처기업들이 삼각구도를 형성하며 모바일 및 디지털 멀티미디어용 SoC 개발 및 상용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흐름과 요구에 발맞춰 정부의 움직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미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등 유관부처를 중심으로 SoC산업의 전략적인 육성을 위한 교육과 기술개발 및 상용화 지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해 정부는 내년에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IT SoC캠퍼스’를 설립, 향후 4년간 750여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국내 SoC분야의 기초 기반기술 및 설계기술은 선진국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 또 시스템 산업과의 연계도 미흡한 상황이다. 특히 SoC 산업은 시스템설계기술과 반도체설계기술 전문인력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국내 상황은 여전히 부족하다. 따라서 늘어나는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양성 시스템의 효율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또 SoC의 적시출시(타임투마켓)을 위해서는 이미 개발돼 검증된 반도체 설계자산(IP)을 반도체 일관생산라인(FAB)에서 활용되도록 다양한 라이브러리 구축과 유기적인 유통체계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KAIST 산하의 반도체설계자산연구센터(SIPAC)에서 IP표준화, DB구축, 제도연구 등을 수행하면서 이같은 인프라 구축에 첫발을 내딛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기술이 총합돼야 효과적인 SoC설계가 가능한 만큼 대기업, 중소 벤처기업 등 산업계와 학계·연구계 등이 참여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개방형 교류 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제 정부·기업·연구기관 등의 역량을 규합한 전문가 그룹을 형성해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며 “이를 통한 정책입안과 자금투자에 나서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시장경쟁을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기고:경쟁력 향상을 위한 전략-경종민 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사진) ■
시스템온칩(SoC:System on a Chip)의 중요한 의미는 기존에 독립적으로 진행돼 오던 시스템설계와 칩설계가 SoC라는 하나의 통합된 플랫폼에서 융합된다는 점일 것이다. 구현방식과 형태는 반도체칩이지만 설계 및 검증방식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대규모로 총망라된 복합시스템 설계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SoC의 기회이자 도전이다.
SoC의 출현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반도체공정기술의 발전이다. 단일 칩에 구현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개수는 공정기술의 발전으로 매년 50% 정도로 증가하는데 이 공간을 유용한 기능으로 채울 수 있는 능력, 즉 설계기술은 매년 약 20% 향상되는 정도이다.
둘째, 시장의 요구를 들 수 있다. 소비자는 더 빠르고 가벼우며 기능도 다양하고 배터리 사용시간 역시 더욱 긴 제품을 더 싼 가격에 내놓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제품의 수명은 계속 짧아지고 휴대폰·PDA 설계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끝내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놀랍게도 이러한 일이 ‘무어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30년간 진행돼 왔고 세계반도체로드맵(ITRS)에 의하면 지금의 0.13마이크론 기술시대에서 앞으로 15년 후의 0.01마이크론 시대까지는 이 놀라운 기술의 발전행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SoC는 이러한 무자비한 발전을 지속해 갈 유일한 시스템설계 방식이자 실리콘칩의 구현방식인 것이다.
앞으로 IT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SoC와 통신기술로 집약된다. 장차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도 결국 SoC가 가져올 이러한 기회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해 가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반도체산업과 시스템산업이 모두 어느정도 활성화돼 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은 메모리로 편중돼 있기 때문에 사업의 안정성과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급성장하는 비메모리 시장으로의 중심이동이 필요하고, 시스템산업은 휴대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기능·고성능·고이윤화를 향해 갈 길이 아직 먼데, SoC가 바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적인 대안이다.
종래의 교육 및 연구개발, 그리고 상품화 방식으로는 세계 SoC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평범한 다수의 엔지니어의 양산만으로는 안된다. 주문형반도체(ASIC)가 ‘독창’이라면 SoC는 ‘오케스트라’에 해당된다. HW·SW·물리·전자기·재료 등 여러 분야간 열린교육 및 연구를 통해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현재 국내 대학이 가진 폐쇄적인 학과체제의 교육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은 학문의 원리보다는 스스로의 동기부여에 의해 연구분야와 주제를 찾고 여러 학과의 강의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SoC는 시스템설계와 코어(core), 즉 지적재산권블록(IP) 설계로 나뉜다. 시스템설계는 새로운 응용의 스펙을 도출하고 HW와 SW의 복합구조로 분할 구현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하며 전산학의 시스템이론과 알고리듬 설계분야의 배경이 요구된다. 코아 설계에서는 0.1마이크론 이하의 VDSM(Very Deep Submicron) 공정에서 생기는 신호간섭, 열방출, 전력소모 및 전압강하로 인한 신뢰성 문제, 생산수율해석 등의 다양한 기초학문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렇듯 학문분야의 통합적 운영과 목표지향적이고 수요자(학생) 중심의 교육 및 연구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교육과 연구개발과 상품화, 심지어 창업까지 하나의 통합된 환경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SoC가 요구하는 적시출시를 만족시킬 수 있다. 연구소와 대학과 기업체의 복합기능 구현이 가능하고 여러 관련 학문과 기술개발이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SoC 국립연구소’ 형태가 필요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IT산업의 핵심을 이루는 SoC가 우리나라 전체 산업과 경제에서 앞으로 5∼10년 후 차지할 비중은 적어도 30∼35% 정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스템산업과 반도체산업의 새로운 모습으로서 SoC 기술을 위한 인력양성, 핵심기술개발, 전략적 상품화 및 창업 등의 기능을 지원할 정부 기구도 일원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SoC연구소와 같은 전략적 국가 연구소에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안정된 연구활동에 매진하도록 운영·보수·연구지원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시스템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21세기 IT혁명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