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 곧 연봉` 자유로운 용병-코스닥의 IT표준형 CEO
멀티미디어 종합교육 서비스 회사인 솔빛미디어 문우춘 사장(43).
그는 40대라는 나이와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를 나온 최고경영자(CEO)로, 정보기술(IT)인답게 전기공학과를 전공했고 골프가 취미인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코스닥의 IT 표준형 CEO’로 선정됐다.
문우춘 사장을 만난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의 젊음과 활력일 것이다. 이미 물리적 나이로는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외모와 기풍에는 30대를 능가하는 청춘과 유연성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저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체질입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생각이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더 이상 나빠지기보다는 좋은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죠.”
문 사장은 현재 12년간 CEO로 회사 경영을 해오고 있다. 아마도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중도에 회사를 접어야 했던 상황들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고, 30대가 아닌 50대의 외모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첫 직장은 83년 입사한 금성사.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연구소 발령을 마다하고 지방 공장의 현장 근무를 자청, 창원 엘리베이터 공장의 기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은 누구도 그를 동료로서 맞아주지 않았다. 서울대 대학원 석사 출신이란 것이 그들에게는 달갑게 여겨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지낸 지 2개월만에 조촐한 환영회가 열렸다. 말이 환영회지 테스트를 하기 위한 자리와 다름없었다. 이날 그는 맥주잔에 따른 10여잔의 소주를 아무 말없이 마셨다. 다음날부터 비로소 현장의 같은 식구로 인정받으며, 기름때 낀 노동자로서 애환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88년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두번째 직장으로 선택했다. 선진 IT와 흐름을 배우기 위한 결심이었다. 그곳에서 고객관리시스템, 인사관리 프로그램,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선진 시스템을 익혀나갔다. 문 사장은 경영에 대한 마인드가 들어서게 된 시기였다고 자평했다.
90년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삼보컴퓨터와 인연을 맺게 된다. 대형 워크스테이션 사업을 추진하던 삼보컴퓨터가 그에게 함께 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수십억원대의 ‘스톡옵션’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커다란 망설임 없이 삼보컴퓨터를 선택했다.
“일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았던 시절입니다. 주변에서는 거액의 스톡옵션마저 포기하고 세계 일류기업을 떠나는 것에 대해 반대하기도 했죠. 하지만 국내 기업에 들어와 그동안의 노하우를 활용하며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커다란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91년 그는 홀로 가방을 메고 샌디에이고로 향한다. 워크스테이션 사업은 한달만에 취소되고, 삼보컴퓨터는 그를 RDI(삼보컴퓨터가 대주주였던 미 노트북 군납회사)로 파견한 것이었다. 당시 매출액 600만달러의 RDI는 적자 투성이로 자본마저 완전히 잠식당해 파산 직전의 상황에 와 있었다.
파산 처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간략한 보고서를 띄웠다.
“문을 닫으면 건질 것이 없다. 제품 아이디어는 괜찮고 가능성은 있다.”
삼보컴퓨터는 당시 31세던 그를 RDI 사장으로 임명했다. 조건은 본사의 지원 없이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
문 사장에게 숨겨있던 경영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수중에 가진 것이라고는 보름간의 운영자금에 불과한 단 5만달러. 그는 2년간 샌드위치와 커피만으로 때우며 한푼의 월급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처음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 미국 직원들도 서서히 태도가 변하며 회사를 정상화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결국 3년만에 회사는 완전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인간으로 접근하는 한국적 경영기법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CEO가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구체적인 목표 아래 솔선수범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의 누구와도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의 솔빛미디어 사장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전문경영인의 길을 터득해 갔다. 그러는 동안 문 사장은 자신을 ‘용병’이라 부르며, 용병이란 말을 즐겨 쓴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에 대한 그의 애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용병은 자유롭게 떠날 수 있고, 필사의 집중과 성과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사장은 최근 논란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급조된 경영인들과는 분명 다르다. 그는 기업을 비정상적으로 경영하며 투기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한다.
“기업은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입니다. 단편적 경영과 눈속임 운영은 그 생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변칙적인 경영은 어디에선가 탈이 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상식적인 경영과 정상적인 운영을 통한 기술개발과 제품생산, 마케팅 활성화와 영업망 확보, 유기적인 조직운영과 우수한 고객서비스, 시장조사와 수용예측 등 일상적인 기업활동이 유연하게 이루어져야만 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6년간 혹독한 경영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문 사장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교육사업. 교육사업과는 별 다른 관련이 없던 그가 흔쾌히 솔빛을 맡은 것도 어쩔 수 없는 그의 용병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삼보 이용태 회장의 어려운 사업을 책임져달라는 주문에 그는 “아주 어려운 것이라면 제가 해보겠다”며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의 솔빛미디어다.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 솔빛미디어는 지난 2000년 8월 코스닥에 등록이 되었고, 99년 60억원, 2000년 130억원, 2001년 218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연평균 80% 이상의 외형 성장을 보이고 있다. 올해에도 300억원 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문 사장은 솔빛을 맡은 후 곧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IT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STBL(Solvit Theme Base Learning)을 고안해 냈다. STBL이란 에듀테인먼트 학습방식으로 소규모 테마를 통해 지적 단계별, 수준별 문제를 제기, 문제 해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지속적인 집중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학습방식이었다.
어린이 컴퓨터 교육을 주사업으로 하고 있는 솔빛미디어는 지금껏 이 STBL 학습방식을 통해 미래의 IT인재를 양성해 나가고 있다.
코스닥의 표준 CEO로 경영 철학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유난히 상식과 균형 경영을 강조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이면 그것은 가능했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면 역시 현실에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상식적 근거 없이 장밋빛 매출전망만으로 포장된 사업계획은 실패하기 쉽습니다. 꿈과 현실, 투자와 수익, 인간적인 팀워크와 냉철한 구조조정 사이의 균형잡기가 바로 경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 사장은 올해초부터 담배를 끊었다. 무언가 변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신 골프, 낚시 등 취미생활은 더욱 늘리고 있다. 골프는 주로 사교를 위해서지만 낚시는 취미생활이라기보다는 회사 안팎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떠난다. “조용한 강을 밤새워 지켜 보면 어느 덧 해결의 가닥들이 낚여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랜 친우인 허진호 아이월드 사장은 문 사장에 대해 “경영자로서의 판단력과 이상적인 리더십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에서는 결코 단호하거나 카리스마적이지 않으며, 동료나 주변 사람들을 꼼꼼히 챙겨주고 위해주는 특유의 섬세함과 자상함을 보여주곤 한다”고 평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약력>
△60년 7월 9일 서울 출생 △78년 서울 광성고등학교 졸업 △82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84년 서울대 대학원 전기공학과 졸업 석사 △83년 금성사 과장 △88년 마이크로소프트 부장 △91년 미 RDI사 대표이사 △98년 솔빛 대표이사 △98년 솔빛미디어 대표이사
<상훈>
△95년 ‘글터베이직1.1’로 장영실상 △98년 교정행정·교화사업으로 법무부 장관 표창 △98년 ‘이것이 미국영어다’로 우수 CD롬 타이틀상(한국CD롬유통협회) △2000년 2월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평가 우수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