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극장에 연인과 손잡고 들어가 팝콘과 오징어를 자근자근 씹어가며 보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오히려 영화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어두컴컴한 PC방에서 게임 한판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갖가지 게임의 실감나는 총격소리가 컴퓨터 모니터를 뒤흔들 만큼 시끄러운데도 담배연기만 자욱할 뿐 진지함과 침묵만이 맴도는 그런 PC방 말이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영화, 거짓말 등 숱한 문제작을 만들어온 장선우 감독이 이번에는 극장 개봉용 ‘게임’ 한편을 제작했다. 영화 ‘성냥팔이…’는 마지막 자막이 오를 때까지 게임이라는 코드를 한시도 놓치지 않는다.
당연히 게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에 푹 빠져 본 사람들이라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듯하면서도 정곡을 쿡쿡 쑤셔대는 장 감독의 송곳은 피할 수는 없다. 영화는 현대사회 게임의 함축적 의미도 끊임없이 반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공격력이 뛰어나나 주위가 산만한 ‘라라’를 비롯해 위대한 조폭건설을 위해 모여든 5명의 단체접속자 ‘오인조’ 등 무수한 플레이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성냥팔이 소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심지어 서로 죽일 수도 있다.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만연한 이른바 PK(Player Killing-게임상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행위)는 현실 속 폭력으로 이어지거나 모방범죄 가능성이 짙어 사회적인 문제거리로 떠올랐다.
또 오뎅집으로 위장해 있으나 실은 무기 거래하는 상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플레이어들은 ID카드를 통해 돈을 지불하고 더 좋은 무기를 사들일 수 있다. 상점 주인은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불법 접속자이지만 별다른 사고를 일으키지 않아 그의 행동은 묵인되고 있는 상태다. 이 역시 게임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아이템 현금 거래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2001년 사이버범죄 검거현황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아이템 현금거래는 전체 인터넷 사기사건의 62.3%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영화의 핵심키워드인 나비는 게임계 이슈에 대해서도 총체적으로 말해준다. 영화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찻잔에서 본 나비는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영화가 장자의 호접몽(장자가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자신이 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는 고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결국 게임이 현실이고 현실이 게임이며 가상현실과 현실은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가상현실을 다룬 ‘아바론’ ‘메트릭스’ 등의 여타 영화와 달리 게임과 현실 구분이 치밀하지 못하고 다소 엉성하게 구성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흘밤낮 게임만 한 30대 남자의 죽음, 게임 속에서 군락을 형성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불티나듯 팔리는 아바타아이템 등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들을 목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위에서 지적한 PK, 아이템거래, 폭력 등은 게임 내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반복되어 온 일이라는 점에서도 실상 가상현실과 현실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