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수준의 IT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그러나 국내 IT산업의 시작을 이끈 ‘신인류’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도 아시아 변방의 한 국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도입 초창기에 각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원로들은 지금도 국내 IT산업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중이며 본격적인 디지털시대에 돌입하면서 등장한 젊은 인물들은 세계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는 등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컴퓨터만 생각한 사람-삼보컴퓨터 이용태 명예회장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69)은 한국 IT 역사에서 컴퓨터 대부로 불린다.
이 회장은 IT 불모지나 다름없던 지난 70년대 중반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전산기 연구실장과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전산개발부 부소장을 역임하면서 국내에 PC기술 도입과 개발을 추진했다.
정부에 대한 지원요청이 번번히 거절당하자 그는 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서울 중구 퇴계로의 10평 남짓한 골방에 삼보컴퓨터를 설립하고 이듬해 역사적인 국내 최초의 퍼스널컴퓨터 ‘SE-8001’을 선보였다.
SE-8001은 수작업으로 만든 엉성한 본체와 텔레비전을 개조한 모니터를 채택했지만 인기를 얻었고 해외에도 수출되는 등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컴퓨터 5000대 도입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계기로 대기업이 대거 PC사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PC산업의 중흥기가 열리게 된다.
지난 82년 데이콤을 설립했으며 두루넷을 비롯한 수많은 IT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은 전경련 e코리아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지금도 국내 IT발전을 위해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 최강국의 그 날까지-KAIST 전길남 교수
이용태 명예회장이 컴퓨터 역사의 산 증인이라면 전길남 KAIST 교수(59)는 인터넷 발전의 중심에 서 있다.
일본에서 성장하고 미국 유학과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 생활을 거친 그는 정부의 해외 한국인 과학자 유치정책에 호응, 국내에 정착했다.
그는 82년 서울대학교 전자계산기 학과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전용회선으로 연결하는 ‘SDN’을 구축했다. 이는 우리나라 인터넷의 효시로 불렸으나 미국과는 연결되지 않는 국내 온라인망이었다.
전 교수는 KAIST와 KT를 주축으로 다른 인터넷 선구자들과 함께 1억5000만원을 갹출해 해외 인터넷에 직접 접속하기 위한 ‘하나망’ 구축 프로젝트를 계획했으며 90년 마침내 미국 하와이대학과 연결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통해 역사적인 e메일을 주고 받았다.
이후 하나망이 확대되면서 국내 연구기관 및 대학들이 인터넷에 연결됐으며 94년 이후 민간 인터넷서비스공급자(ISP)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국내 인터넷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됐다.
전 교수는 지난 97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첨단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비영리 컨소시엄인 ‘APAN(Asia-Pacific Advanced Network)’ 결성을 주도했으며 현재 차세대인터넷 프로토콜인 IPv6의 실질적 보급을 위해 노력중이다.
◇바람직한 벤처상 정립하는 대학생 벤처 1호-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45)에게는 ‘대학생 벤처 1호’라는 명함이 따라다닌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충무로 기술자에서 검정고시를 거쳐 인하대에 입학, 대학 3학년 때 비트컴퓨터를 설립한 입지전적 이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벤처 1세대 멤버 중 거의 유일하게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82년 국내 최초로 보험청구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면서 낙후돼 있던 의료정보산업 발전에 공을 세워 89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 한국의 3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2000년에는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벤처 나눔의 문화 확산에도 일조하고 있다.
◇컴퓨터 히포크라테스-안연구소 안철수 사장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안철수 사장(40)은 서울대 의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지난 88년 국내에 상륙한 ‘c브레인’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을 개발, 무료 배포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 백신시장을 굳게 지키고 있다.
의사정신에 투철했던 안 사장에게 백신 프로그램으로 떼돈을 벌겠다는 거창한 욕심은 없었다. 다만 컴퓨터 이용자가 아무런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베풀 뿐이었다.
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 사업에 뛰어든 안 사장은 회사가 어려워도 개인사용자에게는 무료정책을 고수하고 사업전개시 투명성을 가장 중시하는 모습으로 벤처 CEO의 도덕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 97년 연구소를 1000만달러에 팔라는 미국 맥아피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하면서 밝힌 이유는 “상업적 이익만을 따지는 외국 기업에 회사를 팔면 가족, 직원, 우리나라 고객 모두가 피해를 본다. 나에게는 돈보다 인간관계, 성취욕구 등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벤처비리와 기업의 도덕 불감증이 팽배한 요즘 안 사장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커지는 이유다.
◇국산 소프트웨어의 신화창조-드림위즈 이찬진 사장
지난 89년 대학생의 신분으로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을 개발했던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37)은 원조 ‘한국의 빌 게이츠’로 꼽히는 인물이다.
90년도에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한 이 사장은 회사설립 만 3년 만에 일반 소비자 대상의 패키지 소프트웨어 매출로는 처음으로 100억원 매출을 달성했으며 96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사로는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는 등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을 이끌어왔다.
컴퓨팅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고 95년부터 한글과컴퓨터 기업 내에서 인터넷 관련 사업을 추진한 이 사장은 국내 최초 한글검색서비스인 심마니를 만들고 97년에는 포털 개념을 표방한 네띠앙 서비스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사장은 99년 설립한 포털회사 드림위즈에서 인터넷 사업의 꿈을 본격 실현해나가고 있다.
드림위즈는 후발 포털로 출발해 인터넷 산업의 부침 중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3년 만에 인터넷 순방문자 수 순위에서 4위에 올라서며 선발 포털을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올 들어 이익경영도 실현하며 이 사장의 새로운 도전에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온라인 게임의 선두주자인 ‘리니지’의 창시자.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이지만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35)은 컴퓨터 업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최고 히트작인 ‘아래아한글’은 대학 선배인 이찬진씨와의 공동 작품이며 이후 한메타자로 잘 알려진 한메소프트를 공동 설립하는 등 젊지만 우리나라 벤처의 역사에 한획을 그었다.
김 사장은 이후 현대전자에 입사, 1년간 보스턴소프트웨어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인터넷사업에 뛰어들 의지를 굳혔다. 그는 인터넷을 이용한 게임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으며 이것이 적중했다.
97년 엔씨소프트를 창립한 김 사장은 엔씨소프트를 설립한 지 만 5년 만에 매출 1200억원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98년부터 상용화에 들어간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첫해부터 국내 게임시장을 석권, 3000만명의 누적회원을 보유하는 세계 초유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며 해외시장 개척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터넷사업과 젊음은 찰떡궁합-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를 이끌고 있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34)은 인터넷을 ‘젊은 사업’으로 규정짓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연세대학원 전산과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그는 인터넷이 인간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료 두 명과 함께 95년 2월 자본금 5000만원을 갖고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3명의 ‘무서운 20대’는 무료 e메일 서비스인 ‘한메일넷’을 앞세워 다음을 국내 최대 토종 포털로 우뚝 세우는 신화를 창조했으며 이 사장은 우직한 덩치와 달리 경영수완이 뛰어나고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과 함께 한국의 ‘제리 양’으로 불렸다.
현재 다음은 직원 300명, 가입자 수 3400만명, 1일 페이지뷰 4억을 넘었으며 매출과 수익성도 급성장해 올 1분기에 지난해 매출 909억원을 넘어 911억원을 달성하고 영업이익도 42억원 흑자를 기록하는 등 포털업계 수익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국산 PDA 신화의 시작-제이텔 신동훈 사장
지난 97년 개인휴대단말기(PDA) 벤처기업인 제이텔을 창업한 신동훈 전임사장(38)은 국내외 유수의 기업도 고전하던 국내 PDA 시장에서 ‘셀빅’ 신화를 일궈낸 장본인이다.
삼성전자 PDA개발팀 출신들이 다시 모여 개발한 셀빅은 독자 운용체계(OS) 채택으로 인한 저렴한 가격, 완벽한 한글지원 등을 무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4년 연속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말 신 전임사장은 박영훈 사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기술개발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혀 진정한 벤처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