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로 인한 후유증은 21세기 내내 세계인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지난해 9월 11일 이후 뉴욕 거리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이 지적에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없다. 테러가 세계경제의 심장부 ‘주식회사 미국’을 강타한 지 1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계가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CNN방송은 뉴욕시와 세계무역센터(WTC) 입주기업들의 직접 피해에서부터 보험료와 보안비용 증가, 일자리 감소, 항공수요 및 여행객 감소 등으로 인한 간접 피해를 포함시킬 경우 테러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수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국인의 애국심에 기댄 일시적 현상이라고는 해도 테러 이후 일반의 예상과 달리 유가가 크게 상승하지 않았고 소비심리도 안정돼 경제적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테러에서 비롯된 상흔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은 물론 세계경기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IT업계 일부에서는 미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안보 분위기가 IT경기를 부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제2테러와 이라크에 대한 보복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같은 비관론의 배경에는 테러 못지 않은 파괴력을 지녔던 ‘금융회계 스캔들’이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에너지업체 엔론의 회계문서 파기사건을 시작으로 퀘스트커뮤니케이션스·월드컴·글로벌크로싱·아델피아 등 IT업체들의 분식회계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회생기미를 보이던 미국 증시와 경제는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상대적으로 깨끗할 것으로 믿어져 왔던 IT업계의 스캔들을 대한 투자자들의 원망은 극에 달했다. 미국증시는 테러라는 외부충격에는 신속하게 복원됐지만 시장 내부결함과 모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에는 탄력성을 잃은 채 비틀거렸다.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든 투자심리는 다시 한번 중대위기를 맞게 됐다.
이런 와중에 IT업계로서 한가지 다행스런 것은 미국정부가 IT 경기부양에 나서기로 했다는 점이다. 미국정부는 오는 2007년까지 정부내 정보시스템 및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연평균 11%씩 늘려가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2002회계연도 371억달러인 IT지출 규모는 2007회계연도에 633억달러로 증가한다. 이 같은 조치는 특히 민간분야 IT지출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미국정부의 투자가 양적인 단계에서 질적인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상징적 의미 이상의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테러가 조금 지나자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은 IT경기는 하반기 바닥을 친 후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IT업계 역시 “이제는 아픔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또 다른 테러와 뒤이은 보복전쟁이라는 변수를 감안하면 경기 전망은 밝을 수 없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그룹은 테러 이후 IT산업에 △시장 불확실성 증대 △단기투자 집중 등 몇가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테러와 보복전쟁이라는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 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IT부문 어려움 역시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다른 부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신경제’의 동력으로 작용했던 IT업체들 앞에도 깎아지른 절벽만 남아있는 셈이다. 오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전적으로 개개 업체가 보유한 도구에 달려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