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새로운 20년이다(3)-IT 인력난 전문가 좌담회

 지난 20년간 IT 산업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해 온 주요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이다.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현 시점에서 능력있는 인재의 필요성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IT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2∼3년 전부터 수험생들의 이공계 진학 기피현상이 사회문제로 부각됐는가 하면 인력은 넘쳐나되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하드웨어 인프라가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소프트웨어 산업 부문에서는 인력난이 더욱 극심하다.

 창간 20주년을 맞는 전자신문은 IT 신인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이 같은 IT인력난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편집자

 

 ▲토론참석자:이남용 숭실대 컴퓨터학부 교수, 유순신 유니코써어치 사장, 송석헌 가트너그룹 부장, 김은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IT인력개발단 팀장

 ▲사회:원철린 전자신문 문화산업부장

 ▲ 장소:유니코써어치 대회의실

 

 △사회(원철린 전자신문 문화산업부장)=현재 국내 IT인력 수급 현황은 어떻습니까.

 △이남용 교수(숭실대 컴퓨터학부)=지금 산업계에서는 인력이 수십만명 부족하다는 얘기가 무성하지만 실제 기업 CEO의 얘기를 들어보면 인력은 넘쳐나도 고급 IT인력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저 역시 벤처기업을 경영하면서 인력채용 공고를 내면 지원자는 많아도 채용할 인력이 없습니다.

 결국 고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죠. 그동안 정부의 IT인력 양성책이 정보화 확산을 위해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사람, 즉 중저급 인력 양산에 초점을 맞췄던 것도 이 같은 결과에 대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은민(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IT인력개발단 팀장)=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IT인력 육성책이 대학 학과 및 정원, 민간 강좌 확대 등 양정 팽창에 주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양적 확대에 의미를 둔 것은 인도의 사례 등에 비춰볼 때 양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을 나와도 갈 곳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보니 올 하반기에 2200명 정도를 채용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50% 이상이 경력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같은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질적인 내용이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순신(유니코써어치 사장)=앞의 두 분 얘기에 동의합니다. 현재 기업은 히딩크형의 다재다능한 인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물로 많은 인재를 거둬들이는 그물형 인력 채용이 주류를 이뤘다면 이제는 시간을 들이더라도 쓸 만한 소수의 인물을 발굴하는 낚시형이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즉시 활용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기업의 하드웨어 구성은 80% 이상 완성됐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60점에도 못미칩니다. 그나마 뛰어난 고급 인력은 외국으로 수출하고 저급인력은 제3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어 인력 공동화 현상마저 초래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중간급 인력만 남아 선진국에서 하청을 받는 구조가 형성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송석헌(가트너그룹 부장)=학생들이 이공대를 졸업한 직후의 상황이 외국과 큰 차이가 납니다.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보니 대학 교수의 연봉이 기업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집니다. 기존 실무자에 대한 재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2년만 교육을 소홀히해도 도태되게 마련인 IT업계에서 재교육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사회=인력난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하드웨어 인프라 위에 인재를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 자원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은 없을까요.

 △이남용=우선 IT 고급 인력의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번 이바야콥슨 박사는 한국을 방문해 영어능력을 비롯, 응용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기술을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대학의 경우 양질의 연구개발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보다 왕성한 투자를 단행해야 합니다. 대기업이나 돈있는 벤처기업은 돈을 덜 들여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데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인재를 직접 양성하는 장기 교육 과정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IT 국가 경쟁력의 척도인 미들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송석헌=기업이 스카우트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잘못이지만 인력시장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기업내에서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상하 활발한 토론을 통해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며 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원이라도 비즈니스 마인드를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같은 안이 현실화되려면 개인의 주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함은 물론 지식 공유를 통한 시너지효과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겠죠.

 △김은민=진흥원에서는 수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 같은 차원에서 인력 수급 문제도 접근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한국의 소프트웨어 수출액은 생산액 83억달러 중 3억달러에 그치고 있는 데 비해 인도는 생산액 100억달러 중 78억달러가 수출입니다. 향후 2010년까지 연평균 100%의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인력 현황에도 상당히 큰 변화가 필수불가결합니다.

 내수에서 수출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면 우선 신기술 습득의 매개체인 외국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또 우리의 울타리만 고집하기보다 해외 인력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자세도 요구됩니다.

 △사회=외국어 능력도 문제지만 다양성을 취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순신=맞습니다. 최근 헤드헌팅 업체들에 대한 기업의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30% 가량이 IT와 타 산업에 대한 지식을 접목시킨 인재를 원합니다.

 오히려 최근 인터뷰에 응하는 신규 인력들은 외국어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적은 좋아도 프레젠테이션과 토론 능력이 역부족입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경영자 마인드를 심어줘야 할 것입니다. 기업은 리더십을 채용의 필수조건으로 꼽고 있습니다.

 △김은민=일단 기업에 입사한 이후에는 재교육도 문제입니다. 개인이 기업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고 관리직이나 학원강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리콘밸리에는 나이 많은 기술인력이 자주 눈에 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때가 되면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승진을 못하면 개인 이력에 타격을 입는다는 인식도 고급 인력 양성에 걸림돌이되죠.

 △유순신=기업도 책임이 있습니다. 외국처럼 기업이 개인의 경력관리를 꾸준히 해줘야 합니다.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훌륭한 인재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그만큼 기업이 인재관리를 소홀히 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국내 일부 대기업이 사회간접비용을 투입해 경력관리를 비롯한 전사적 인력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사회=오늘 지적된 문제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한 장기적인 대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송석헌=인력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학교, 기업, 정부간 원활한 의사소통입니다. 산학협력이든, 재교육이든 보다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순신=국가간 벽을 허무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인종, 나이, 학벌을 초월해 외국의 인력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학력 위주로 인력을 채용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과감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김은민=대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처방은 학부제의 폐단을 개선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수과목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수할 수 있는 트렉을 정비하고 전공뿐 아니라 타 학문과 접목해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확충해야 하지 않을까요.

 해외 대학과의 교류 프로그램이 보다 늘어나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남용=IT 프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풍토를 개선하는 작업이 선결과제입니다. 인력 채용에 있어서도 물타기가 성행하다보니 전문가가 없습니다.

 범정부적인 차원에서도 정부 관료에 IT 고급인력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을 이끄는 리더가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인 데 비해 우리는 청와대 관리 800여명 가운데 단 한명 정도가 IT 관련 전문가라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지식 정보화가 원만히 추진되려면 시장에서 IT 전문인력을 존중해주는 환경을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또 정부도 양질의 SW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막연히 대중에게 인터넷을 확산시키는 교육 등에만 치중하지 말고 장기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정리=엔터프라이즈부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