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33)4부 시민과 국가가 나서야 한다(3)

(3)콘텐츠 심의는 달라져야 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위원장 박영식·이하 통신위)과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이하 영등위)는 닮은 꼴이다. 각각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으로 정부부처 소속은 다르지만 설립근거에서부터 업무방식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 두 기관은 신문과 방송, 공연 등을 제외한 일반인에게 유포되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사전 혹은 사후에 심의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성격의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표참조

 두 기관은 디지털 콘텐츠의 내용을 심의하는 핵심기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전화, PC통신, 인터넷, 모바일 등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에 대해 심의, 규제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게임, 비디오, 음반 등도 온라인게임, DVD, MP3 등으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는 정보통신기술(IT)이라는 그릇에 담긴 음식물로 어떤 음식물을 어떻게 소화하는가는 곧 IT문화를 결정짓는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디지털콘텐츠는 가공된 정보를 손쉽고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음란사이트 기승, 사행성 조장 및 사기행각, 게임 중독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건전한 IT문화 정립에 큰 걸림돌로 이에 대한 일정 수준의 내용 심의는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보호측면에서 필터링은 꼭 필요하며 통신윤리위나 영등위가 상당한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IT 문화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두 기관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이 두 기관의 권한이 사회적인 합의와 무관하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적지않은 시민단체들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과거 헌법재판소로부터 ‘검열기관’이라는 판정을 받은 영상물등급위원회 전신인 공연윤리위원회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으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모양새도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부처 소속 기관이 주체가 되어 규제절차를 수행하는 것은 아무리 공정하게 규제절차를 수행한다고 할 지라도 국가권력으로부터 검열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없애기는 힘들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권실천시민연대, 진보네트워크 등 55개 단체들은 ‘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 등급제 등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벌이고 있다.

 심의 원칙이나 방식에 대한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경우도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이하 음비게법)에 따라 대한민국예술회원자의 추천에 의해 대통령이 위촉한 위원들로 구성된 민간기구라고 하지만 문화부 산하기관으로 분류되어 있는 데다 정부보조금을 받고있어 심의 원칙이나 규제 방법이 관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관련업계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내용규제가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라인게임업체들은 아직 시장이 초기단계인 점을 들어 지난 7월에 실시된 온라인등급제가 시장을 축소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청소년유해매체물 유해표시제’에 대해서도 일부 적발업체들이 재심절차에 대한 항의로 논란이 이어졌다.

 통신위와 영등위는 장기적으로 현재 정부기관 주도의 규제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업계 자율규제나 시민들 스스로에 의한 규제체제로 바꾸겠다는 지향성을 가지고 시민과 업계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무엇보다 주력해야 한다.

 두 기관이 시민사회의 군림자가 아니라 진정한 지원자(서포터즈)로서 얼마나 노력하는 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올해 초 온라인게임 사전등급제 실시 여부를 앞두고 영등위와 통신위는 신경전을 벌였다. 문화부 소속인 영등위는 온라인게임도 게임이므로 음비게법에 의해 사전심의를 할 수 있다는데 대해 정통부 소속인 통신위는 온라인게임은 전산망을 통해 수요자에게 제공된다는 점을 들어 영등위의 관할이 아님을 주장했다.

 이들의 대립은 정통부와 문화부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부처 밥그릇 싸움에 업계들이 눈치보기가 바쁘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기관의 이같은 사례는 정부기관이 본연의 역할보다 제 몸집 불리기가 더 먼저라는 인상마저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끼리도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데 시민사회와 업계들과 역할분담은 아직 요원한게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아직은 업계가 스스로 규제를 할 수 있을 만큼 시장이 충분히 크지 못해 여력이 부족하고 시민사회의 역량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시민들의 자율규제 역량을 키우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YMCA 열린정보센터의 김종남 사무국장은 “정부기관이 마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는 급변하는 IT환경의 다양한 문제들을 대처할 수 없다”면서 “정부, 업자, 시민이 문제해결을 위해 고루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는 예산지원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업계와 시민사회를 성숙시키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인터넷 내용 규제 정책>

 ○ 미국

 청소년유해표현물법의 형태로 인터넷을 규제하기 위해 연방차원에서 입법화된 것이 연방통신품위법(CDA I)과 온라인아동보호법(CDA II)이었으나 청소년보호의 필요성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기존의 매체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의 유해표현물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이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CDA상 형사처벌 규정으로 인터넷상의 정보제공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CDA I과 CDA Ⅱ 모두 위헌 판결을 받았다.

 ○ 독일

 청소년을 위한 표현물 규제시스템으로서 전형적인 국가 주도의 등급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독일은 인터넷 내용 규제에 대해서도 기존의 청소년유해물법상의 목록 등재주의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한편 멀티미디어법에 의해 개정된 청소년유해물법의 경우는 중소규모사업자들을 위해 청소년보호담당자가 수행해야 할 업무를 자율규제 단체에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 호주

 지난 99년 온라인서비스법 제장으로 구축된 호주의 인터넷규제모델은 호주방송청이 운영하는 핫라인(이의제기시스템)을 중심으로 사업자 행동강령의 제정과 시행, 사회공동체에 대한 교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법을 통해 인터넷 내용규제는 인터넷 기업과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공동규제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외국의 영화 등급 분류 정책>

 ○ 미국

 미국의 등급제도는 철저하게 민간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제작자나 배급업자가 등급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시장진출에 대한 제한은 없다. 다만, 미국영화계의 독특한 상관습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 영화 제작자들은 업계 스스로 조직한 등급기구인 CARA(Classification And Rating Administration)가 제시하는 영화등급분류 기준을 따른다.

 ○ 프랑스

 프랑스의 등급제도는 미국과는 다르게 영화산업법 등급분류에 관한 근거 법률에 의해 등급기구가 운영되고 있으며 영화상영을 위해서는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상영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또 포르노그라피를 상영할 수 있는 성인영화전용관을 인정하고 있으나 보조금 지급 금지나 광고지급 금지 등의 조처를 취하고 있어 X등급의 포르노 영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 독일

 독일은 포르노그라피 반호에 대한 규정을 형법 속에 명문화하고 청소년이나 원치않는 자에 대한 포르노그라피의 배포를 금하고 악성(hard-core) 포르노그라피가 아닌 경우 성인에게 허용하고 있다. 또 영화관련 업계들의 자율조직인 ‘영상자율규제위원회’는 해당 영화가 유해한 포르노그라피가 아니라는 형법상의 ‘무혐의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