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요재지이/포송령 지음/김광주 역/자음과 모음 펴냄
어수룩한 서생 ‘영채신’과 아리따운 귀신 ‘섭소천’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녀유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모름지기 ‘귀신’의 유형은 제 나라의 습속과 정서를 통해 형상화되는 이유 때문이겠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중국 귀신 ‘섭소천’의 성정은 소복을 차려입은 우리나라의 ‘처녀귀신’이나 흡혈의 상징을 지닌 서양의 ‘드라큐라’와는 사뭇 다르다.
‘요재지이’는 중국의 요괴와 정령이야기를 통해 세상사에 대한 견해를 펼쳐가는 흥미로운 환상소설의 외연을 띠고 있다. 이 책은 최근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되고 있어 화재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미 서유기·금병매·삼국지 등과 함께 중국 8대 기서로 꼽히는 동양 고전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간 몇몇 종류가 간행된 바 있으나 책의 전모를 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그 반가움이 더욱 크다.
저자 포송령은 상인인 포반의 넷째 아들로 두뇌는 명석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한 수재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문학적 재능을 지닌 채 평생을 이름없는 시골훈장으로 살면서 독서와 저작에 전념, 491편의 이야기를 묶어냈는데 20여년의 공력이 고스란히 담겨진 책이 바로 ‘요재지이’다.
‘요재’는 포송령의 서재 이름으로 제목이 뜻하는 바는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다. 그 내용 또한 제목만큼 기이해서 서양문학의 분류법에 따른다면 과히 팬터지 소설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만하다. 아리따운 처자를 도와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요괴여서 화를 당한다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죽음을 억울해 한 아들이 그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저승에 찾아가고 생이 다하기도 전에 염라대왕의 대리가 되어 직책을 수행하는 이야기 등 이승과 저승을 가로막고 있는 이분법적 구분은 사라지고 사람과 귀신 사이의 엄격한 경계가 모호해진다.
포송령은 매일 아침 차를 끓여 넣은 물통과 담배 한 포를 준비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큰 길가에 나가서 방석을 깔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고 또 묻기도 하며 이렇게 들은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서 문학작품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글의 묘사가 세련되고 구성이 정연해 변환하는 형상이 읽는 이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은 포송령의 재주에서 기인하는 바다.
‘요재지이’의 참된 매력은 귀신이나 요괴로 하여금 인간성을 구비하게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 세상의 심상한 일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준다는 데 있다. 예를들어 ‘인간의 가죽’의 결말에서 엿볼 수 있는 인과응보의 교훈은 ‘요재지이’가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포송령은 세상 사람들의 입을 빌어 당시 농민의 빈곤한 생활상, 과거제도의 부패, 폐쇄적인 봉건사회가 빚어낸 어두운 시대상을 훌륭하게 포착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학자인 조르주 뒤비에 따르면 1000년 전의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느꼈던 불안감과 초조함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중세인과 현대인의 경험치가 유사하다는 단언을 받아들이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사이버공간 속 가상의 시나리오나 팬터지 문학에 대한 열광은 일정정도 불안한 삶의 현재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17세기 당대의 중국인들이 팬터지를 통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을 놓치지 않고 책을 읽는다면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분방한 욕망을 문학의 세계로 옮겨놓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