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비탈`에 선 코스닥

 “차라리 코스닥에 등록하지 않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과거처럼 공모자금이 풍족하게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신경써야 할 데가 한둘이 아닙니다. 기업설명회(IR) 담당자 신규 채용, 주간사 수수료 부담, IR 개최 등 제반 등록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정식등록 후에는 분기별 사업보고서 제출, 각종 공시 의무 등을 통해 경영 상황을 낱낱이 공개해야 하니 부담감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회사의 실제 유통 주식 수가 적다 보니 작전세력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등록 준비 시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정정 사업보고서 문제로 모 기관에서 호출을 받기도 했습니다. 눈치를 봐야 할 기관이 많아졌다는 의미지요.”

 최근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정식거래를 앞두고 있는 중소 IT기업 CEO의 푸념이다.

 이 CEO의 푸념 속에는 차라리 코스닥에 등록하지 않았으면 이것 저것 신경쓰지 않고 최대주주로서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났다. IT산업의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과거 기업공개 시 들어온 거액의 공모자금으로 변변한 수익모델 없이 회사를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는 기업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한 중견 IT기업은 IMF 당시 외환관리를 잘못해 회사가 휘청거리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환헤지 전략과 강도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이제는 견실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회사는 2년 전쯤 코스닥 등록심사를 통과했으나 코스닥이 극심한 침체 국면에 돌입하자 등록에 실익이 없다고 보고 정식등록을 포기했다. 이 업체 외에도 최근 들어 코스닥이 죽을 쓰자 코스닥 등록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업체가 적지 않다.

 최근 코스닥 등록에 회의를 느끼는 기업이나 CEO가 많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기업공개를 통해 들어오는 공모자금보다 경영투명성 확보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요즘처럼 코스닥 종목주가가 바닥을 헤메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칫 회사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 절차는 과거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많은 기업이 코스닥 입성을 눈앞에 두고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게 최근의 상황이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에서 코스닥위원회가 승인하지 않은 이유로는 사업성 검증 미흡(17.8%), 수익성 검증 미흡(17.8%), 관계회사 위험(9.8%), 신규사업 불확실성(9.2%) 등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주된 사업부문 외의 매출 비중 과다, 직전 사업연도에만 매출액 급증, 주요 매출처의 불확실성, 재무안정성 미흡, 재무자료 신뢰성 미흡, 경영투명성 미흡, 매출 채권 관련 위험, 법령 위반, 예비심사청구서의 부실 기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들이 코스닥 진입 문턱에서 좌절하고 만다. 이 같은 항목들에 결정적인 하자가 없어야 비로소 하나의 코스닥 등록기업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통과한 코스닥 등록에 대해 기업이나 CEO들이 문득 회의감을 갖는다면 코스닥은 더욱 설자리를 잃을 게 분명하다.

 <장길수 디지털경제부 차장 ksjang@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