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은 지금 ‘기술’ ‘인재’ ‘기업’이라는 3장의 티켓을 들고 디지털시대 궤도 한복판을 질주하는 급행열차에 올라타 있다. 이 티켓은 열차의 목적지인 글로벌 강국 진입을 위한 입장권이기도 하다.
디지털시대의 기술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산업화 시대의 냉장고를 세탁기, TV, 이동전화, 자동차, 거실, 사무실을 총 지휘하게 하는 홈네트워크 서버로 만들어 주는 총화가 디지털시대의 기술이다. 다음 세대의 기술인 나노메카트로닉스, 바이오, 에너지, 문화콘텐츠 등과 함께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이미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런 성과와 자신감은 IT강국으로서의 지속적인 투자와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의 기술은 절호의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물적 기반을 담보로 하는 산업화시대의 기술과 달리 디지털시대의 그것은 사람의 창의력, 사고력, 정보활용능력 등 유동적인 환경을 기반으로 사상(事象)되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는 한 사람의 인재가 100만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이제 기업의 경영자는 우수 인재를 확보·양성하는 것이 기본 임무가 됐다. 이미 세계 유수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과 LG가 팔을 걷어붙이고 ‘1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글로벌톱’을 위해 대규모 인재양성에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의 경쟁도 날로 격화되고 있다. 기술과 인재 유치에서 최고만이 살아남는 디지털시대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이제 밥을 먹는 일처럼 흔해지고 있다. 지난 70∼80년대 전세계에 ‘메이드 인 재팬’을 심어준 것은 소니나 도요타 같은 초우량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휘청거리는 일본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역시 마쓰시타, 도시바, NEC 등 한때의 초우량기업들이다. 일본과 일본기업들의 사례는 국가든 기업이든 여차하면 밀려날 수밖에 없는 디지털시대의 냉혹함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시대의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교훈삼아 IT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부은 결과 디지털시대의 선진국 문턱에까지 다달았다. 열등감은 자부심으로 바뀌고 냉소는 열정으로 바뀌었다. 지난 80년대 초반 전자정보통신 분야가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지 20여년만의 일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20년은 지난 20년 동안에 걸쳐 진행된 변화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갖고 진행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하루도 빠짐 없이 겪는 일상사가 됐고 이런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기업·사람은 영원히 낙오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지구촌은 이제 완연한 디지털혁명시대의 한복판에 와 있다. 고속 디지털 궤도를 안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달리기 위한 확실한 방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것은 바로 ‘1등 기술의 구현’ ‘유능한 인재의 유치’ ‘초일류 기업의 지향’이라는 3장의 티켓을 끝까지 유지하는 일이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