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다시 화해협력의 기운이 다시 감돌고 있다. 남북관계의 양대 축인 정부 당국간 대화와 민간 차원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6·29 서해교전으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8월 이후 제7차 장관급회담, 8·15민족공동행사,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회의, 적십자회담, 2002 통일축구대회, 제5차 이산가족 상봉 등을 성과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눈녹듯 풀리고 있다. 금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인공기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당국의 승인아래 부산아시안게임대회 기간 중 남한 땅에서 게양된다.
남북관계 일정도 올 연말까지 꽉 차있다. 북한 선수단·응원단의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참가를 비롯, 10월 말 북측 경제시찰단의 남측 방문, 11월 중 경협위 3차회의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교류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군사적 긴장의 상징인 경의선 연결도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남북 양쪽은 18일 동시에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도로를 잇는 첫 삽을 뜬다. 이어 19일에는 남북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DMZ) 통문을 동시에 열고 들어가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한다. 남북은 올해 말까지 경의선 철도를, 11월 말까지 동해선 임시도로를 잇기로 뜻을 모았다. 경의선 연결은 남북 분단사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임에 틀림 없다.
통일기찻길이 놓이면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의 첫 단추가 끼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경의선이나 경원선이 중국·러시아의 대륙철도망과 이어지면 한반도는 동북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경의선이 통과하는 비무장지대에 남북 공동의 경제협력단지를 설립하자는 구상도 꿈틀대고 있다. 이와 함께 남북은 경협의 산실이 될 개성공단도 연내 착공될 수 있도록 10월중 실무협의회를 갖기로 했다. 경의선 개통으로 개성공단∼영종도 경제특구∼인천공항을 연결하면 남과 북이 모두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달 경협위 제2차회의에서 이중과세 방지·투자보장 등 4개 경협합의서를 이른 시일내 발효시키기로 합의함으로써 남북 경제교류와 협력 가속화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크게 변하고 있다. 북·미, 북·일 관계가 대화 분위기로 급반전되고 있다. 급기야 17일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간에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조만간 미국 특사의 평양 방문 일정도 잡혀있다.
이같은 변화의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다. 북한은 작심이라도 한 듯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6·29 서해교전 이후 7월부터 경제 개혁·개방 조치를 시행하더니 이례적으로 신속한 유감 표명을 했다.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사업 등도 북한이 현재 시행중인 경제개혁 조치와 맞물려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최근 보이는 정책 변화가 여느 때와 달리 근본적·구체적·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북한은 IT산업 발전을 핵심고리로 삼아 경제재건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아직까지 인터넷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이 막혀있는 북한이 조만간 인터넷에 대한 접근을 허용할 것이라는 외신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IT를 경제난 극복을 위한 돌파구로 인식함으로써 남북협력사업에서도 IT분야에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의 기운이 쏠렸던 IT교류협력이 앞으로 남북간 신뢰 회복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기대감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교류와 합의 이행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춰질 경우 남쪽의 정치적 여건·일정 등과 맞물려 합의된 협력사업들이 기약 없이 표류할 가능성도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여기에 남북이 협력사업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걸림돌들도 적지 않게 놓여 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활발한 교류협력에 영향을 받으면서 상당한 진전을 이룩했으나 남북간 놓여 있는 교류협력의 기초가 되는 제반 법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데는 성과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남북이 서로 머리를 맞대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이다.
변화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고 있는 한반도는 지금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2003년 한반도 위기는 단순히 ‘설’이 아니라 현실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남북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는 남북간 긴장 완화와 화해를 위한 중요한 채널이기 때문이다. IT는 남북교류의 활성화와 확대를 위한 매채체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남북교류가 탄탄대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각계의 지혜를 결집해야 할 때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특별기고: 과학기술자 교류 확대를-박찬모 포항공과대학 대학원장 ■
지금 북한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월에 단행한 경제조치가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북한 스스로 ‘획기적 경제관리 개선’이라고 칭한 이 경제관리 개혁으로 가격과 임금이 현실화되어 ㎏당 8전하던 쌀이 44원으로 무려 500배 이상 올랐고 일반 생산노동자의 기본임금이 110원에서 2000원으로 인상됐다. 환율도 달러당 2.15원에서 150원으로 인상됐다.
계획의 분권화에 따른 기업자율권을 제고하고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를 하는 인센티브제도도 도입함으로써 공식부문으로 자본과 노동을 유입시켜 공식부문의 생산 정상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변화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향한 개혁이 아니라 체제내의 개선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이것이 IT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위정자들은 경제회생과 경제강국 건설에 있어 IT가 가장 효율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기술자의 위상이 올라가고 차등임금제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며 IT분야에 좋은 인재가 몰리게 될 것이다. 또한 자율성이 확대됨으로써 선택과 집중에 의한 과제를 선정할 수 있고 기업의 기술혁신이 용이하게 되며 응용 연구기관의 반독립 채산제로의 전환, 창업보육, 위탁연구 추진 등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변화는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다. 지난 8월 베이징에서 열린 ‘2002년 우리말 언어정보산업표준 국제학술회의’에서는 북한의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서 10여명의 학자가 참석했는데, 친교나 베이징 중관춘 과학단지 건설계획 설명회 참석 등 여러 면에서 전에 볼 수 없었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부시 정권 출범 이후 경직되었던 북미관계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악화되었으나 민간차원에서는 IT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김책공업종합대학은 미국의 한 대학과 IT분야 교류협력을 위해 지난 3월 대표단을 미국에 보냈으며 6월에는 미국측 대표단이 김책공대를 방문해서 협력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다른 하나의 변화는 미국의 한 민간 단체가 북한의 청소년에게 컴퓨터교육을 시킴으로써 IT분야 일군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여러 과학기술자, 기업인이 북한에 가서 세미나, 강의 등을 했고 여러 기업이 북한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단계 높은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이제까지보다는 좀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첫째는 IT 교류협력에 저해되는 요소를 제거하거나 개선해야 한다. 특히 바세나르협약, 전략물자수출법 등으로 남북간 교류협력에 필요한 장비를 북한에 반출할 수 없어 많은 문제가 있다. 바세나르협약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각 나라가 탄력적으로 적용하게 되어 있다. 물론 컴퓨터가 군사용으로 사용된다든지 벡터프로세서 포함, 영상강화 목적으로 설계되는 등 다른 규정에 저촉되면 규제를 받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정의 적용에 있어 남북경협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의 공약수를 찾는 것이라 하겠다.
둘째는 북한 기술자가 남한을 방문할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일정기간 남한에서 연수 혹은 공동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KEDO 관련 기술자들이 남한에 와서 교육받은 예가 있으며 운동선수나 예술인들은 남한에 오는데 과학기술자들이 못올 이유가 없다고 본다.
셋째는 북한에서 하루 속히 인터넷을 수용해 사이버 공간을 통한 교류협력이 활발해져야 한다.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에 곧 인터넷이 구축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실화됐으면 좋겠다. 인터넷의 중요성과 장단점은 북한도 잘 알기 때문에 장점만을 살리면서 인터넷을 받아들이는 방안이 하루 속히 모색되기 바라며 이미 많은 연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기대도 크다.
마지막으로 IT교류협력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기본계획(Master Plan)을 세우고 관철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남북공동 IT교류위원회(가칭)’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