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동아시아 IT시대 열린다-동북아 3국 `적과의 동침`

동북아 3국은 IT분야에서 협력과 동시에 경쟁을 해야 하는 묘한 관계다.

 다른 경제 블록에 대응해 상호협력이 불가피하나 주력 분야가 상당 부분 겹쳐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양국간 협력 관계는 잘 진행되더라도 3국간 협력 관계는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3국 모두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IT산업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차세대 IT 기술과 표준화를 위해 3국이 뭉치고 있다. 3국 연대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나 IT산업의 확대와 더불러 날로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3국 경쟁력 비교=IT산업 경쟁력 수준을 놓고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 한국, 중국 순이다.

 일본은 IT기술력은 물론 정보화 활용능력에 이르기까지 3국 중 가장 우수하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부진과 한국의 부품과 정보통신산업, 중국의 제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3국간 격차는 점차 좁혀졌다.

 한국은 D램과 브라운관에 이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모니터, CD롬 등 핵심 IT 부품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산업도 인프라 구축 면에선 일본을 압도한다. 중국은 가전제품을 시작으로 세계 전자·제조업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반도체·LCD 등 한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일본→한국→중국으로 이어지는 생산 및 기술 이전 공식과 분업체제는 점차 의미를 잃고 있다.

 한국 주도의 차세대 IT협력에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올 정도다.

 ◇협력 무드 조성=3국은 또 수출 의존도가 높은 미국 경기가 위축되자 역내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IT경기가 획기적으로 살아나거나 IT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 산업이 등장할 가능성이 낮아지자 협력 분위기는 더욱 조성되고 있다.

 북미(NAFTA), 중남미(MERCOSUR), 유럽연합(EU) 등의 경제 블록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도 뭉쳐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된 것이다.

 3국 협력의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아세안과 한·중·일 회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 자리에서 한·중·일 3국간 무역 개방과 IT협력 리더십을 가져가기로 했으며 최근엔 차세대인터넷과 이동통신 표준화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협력이 급진전하고 있다.

 3국의 기술력이 비슷하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민관 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디지털 가전의 경우 표준확보를 위한 민간 차원의 협력이 논의 중이다.

 역할 분담론도 제기됐다. 4세대 이동통신의 경우 한국은 동기식, 일본은 비동기식 기술이 발달했으며 중국은 광대한 시장을 갖고 있어 협력 가능성이 높다.

 ◇물밑경쟁은 치열=3국 협력의 장이 열리고 있으나 긴장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과 일본은 겉으론 자유무역협정(FTA)을 소리높여 외치나 물밑에서 주도권 경쟁을 벌인다. 특히 3국은 동북아의 IT허브국가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한다.

 선수를 치고 나선 것은 일본과 한국이다.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마저 끌어들이는 중국의 독주를 견제할 필요가 있어서다.

 일본은 ‘오키나와 멀티미디어 특구’와 ‘아시아브로드밴드프로그램’ 전략을 통해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다.

 중국의 인접국인 우리나라는 더욱 다급하다. 국내 IT대기업들도 대중국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올들어 ‘동북아비즈니스중심국가 실현방안’ ‘아시아IT허브국가’ 등의 전략을 잇따라 마련하고 있다.

 IT허브국가의 특성상 한 권역에 한 나라만 낙점된다. 한·중·일 3국의 IT허브국가 경쟁이 앞으로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협력이 대세=이처럼 협력과 경쟁이 얽히고 섥힌 관계이나 3국의 협력은 이미 대세로 다가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3국의 IT산업은 영역이 비슷하다. 3국마다 갖는 문제점 역시 마찬가지다. 연구개발, 마케팅, 인프라, 표준화 등에서 그 무엇 하나 미국, EU에 비해 미약한 게 사실이다.

 경쟁보다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생 구조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 각종 규제의 철폐와 개방적인 사고,과감한 기술 이전과 같이 경제공동체로 가는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한자 문화권이면서도 사뭇 다른 언어 체계도 적잖은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국이 당분간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역내 문제 해결보다도 당장 미국, EU 등 외부 압력이 거세기 때문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누가 이끌고 있나 ■

현재 동아시아IT산업을 이끄는 중심 축은 정부와 대기업이다. 벤처기업이 한 때 ‘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쳤으나 거품처럼 꺼져가고 있다. 다만 훗날을 기약하고 있다.

 산업화 시절에나 적당할 것 같았던 정부 주도의 정책은 IT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OECD회원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한국의 초고속통신망의 성공을 지켜보며 IT산업 육성에서 정부의 역할을 새로 깨닫고 있다.

 한국은 장관은 물론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나서 경쟁적으로 IT강국을 외치고 있다. 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두 나라에 비해 IT에 둔감했던 일본도 ‘아차’ 싶었던지 장관과 총리도 IT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IT산업의 비전을 마련해 리더십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정부는 기존 전통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지위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IT산업화의 방향을 잡는 키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실질적인 축은 기업들이다. 특히 대기업의 역할이 크다.

 3국의 대기업들이 미국의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IT대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3국의 대기업들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전자제품과 부품의 세계 시장을 장악하면서 IT시장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높아진 영향력은 미국의 IT대기업 CEO들이 해마나 연초에 갖는 비공개 모임에 한국의 삼성전자 사장을 포함시킨 것에서 확인된다.

 대기업들은 홈네트워킹, 차세대 통신과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세계 표준화 논의를 주도하면서 미래 일류기업을 꿈꾸고 있다.

 90년대말부터 화려하게 등장했던 3국의 벤처기업들은 최근 주식시장에서 벤처거품이 가시면서 생존에 몸부림치는 신세가 됐다. 그렇지만 상장이 아닌 M&A라는 벤처 본연의 시장이 정착되고 경기 활성화에 따른 투자 분위기가 조성되면 IT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3국 벤처기업들도 재도약할 것으로 기대됐다.

 3국 IT산업계를 이끄는 사람들의 세대 교체도 한층 활발해질 전망이다.

 IT정책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관료가 필요해졌다. 3국의 정부는 컴퓨터와 게임 환경에서 자랐으며 글로벌한 감각도 갖춘 젊은 관료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정치권력의 교체를 앞두고 있어 앞으로 몇년간 관료의 세대 교체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들도 세대 교체가 한창이다. 한국에선 대기업 오너들의 2세 또는 3세대가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룹 경영진의 세대 교체가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워낙 개방이 늦어져 기존 경영진이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으나 조만간 젊은층이 전면에 등장할 전망이다.

 3국에선 또 벤처붐을 조성하는 데 큰 힘이 됐던 1세대들이 떠나간 자리를 20, 30대 대기업과 벤처기업 출신들이 메워가고 있다. 새로운 대형 스타의 탄생이 멀지 않았으며 이들은 21세기 동아시아 IT시대의 주역이 될 전망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3通` 남북협력 물꼬 ■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휩쓴 지난 6월 초순 정부와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등 통신업계 관계자로 구성된 방북단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들은 평양에 4박5일간 체류하며 북한내 이동통신서비스 및 통신망 현대화 사업에 관해 논의하는 등 통신분야의 남북 협력을 위한 물꼬를 텄다.

 또 남북은 분단의 장벽을 제거하고 금강산 육로관광 실현을 위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 동해선 임시도로(1.5㎞)가 연결되는 대로 금강산 육로관광을 실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관광특구 지정 등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리는 제14회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는 것을 계기로 남북은 방송중계망 구축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북한이 최근 러시아와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을 위해 적극 협력할 뜻을 밝혀 ‘고립의 섬’으로 전락했던 한반도 남쪽과 대륙 저편의 유럽이 철도로 연결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북한의 급속한 개방·개혁 드라이브와 미국·일본의 대북관계 개선 등과 맞물려 남북 교류 및 협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통신분야 협력, 경의선 복원, 금강산 육로관광 등의 조치들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를 관통, 통행(通行)·통신(通信)·통상(通商)의 ‘3통(通)’ 실현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이는 남북을 하나로 이어 네트워크화해 국제 정보기술 네트워크 구축, 공동연구·사업화 촉진, 국제 산업기술 이전 등 국제 정보기술 협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국내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동북아 정보통신망의 연동을 주도해 동북아 통신인프라의 허브로 발전시킬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또 한반도 평화안정과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정치적 효과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중국·러시아 등 극동지역을 아우르는 동북아 지역이 명실상부한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경의선과 동해선은 장기적으로 시베리아횡단철도, 한일해저터널 등과도 연결이 추진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수송로로서의 역할도 담당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중국·몽골·북한 등의 값싸고 풍부한 천연자원 및 노동력과 남한의 기술력 및 자본이 결합돼 유럽연합(EU) 같은 거대한 경제권 구축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북한을 방문했던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개혁·개방을 계기로 남한은 환동해권과 환황해권의 교집합 지역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 동북아시아 간선교통망으로서의 역할을 해 낼 수 있게 됐다”며 “세계 경제 3대 축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발전 성과를 국가경제발전에 최대한 접목시킬 수 있는 중심지 전략을 구상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