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이슈기획-갈림길목에 선 반도체산업

 ■"비메모리에 `드라이브` 걸어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지난 30여년간을 쉬지 않고 달려 왔다. 저돌적인 기세로 제동장치 없는 기관차마냥 초고속 항진을 계속해 왔다.

 국내 산업 및 금융 관계자들의 우려와 반대, 해외 선진 반도체 업체들의 비웃음 속에 1983년 시작된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사업 시작 10년만에 한국을 세계 1위에 올려놓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국토 4분의 3이 산지로 덮여있고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의지할 것이라곤 인적자원밖에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메모리산업 대국이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수출비중 1위의 핵심산업으로 급부상했다. 또 전세계 수요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과감한 결단, 선택과 집중이 복합적으로 어울어져 탄생한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 산업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2002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계속되는 IT경기 불황이 가져온 반도체 불황, 세계 3위의 D램 반도체 회사인 하이닉스반도체의 존폐문제, 윈윈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간 파운드리 합종연횡의 난항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머지않은 장래에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통합한 반도체산업 전체에서 최강국으로 부상하느냐 아니면 선두업체의 질주, 후발업체 추격에 밀려 좌초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다.

 우선 1999년 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정부 빅딜정책의 산물인 하이닉스반도체는 LG반도체 합병 첫해 D램 생산량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도 했으나 반도체 불황에 노출된 이후로는 산업계, 더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전반에 구제불능의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외 반도체 업체에 입양시키려 해도 세계 모든 반도체 업체에 적용되고 있는 반도체 불황상황 때문에 선뜻 손내미는 양부모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아를 끌어안고 살 수도 없는 입장이다. 천문학적인 부채 또 그와 유사한 규모의 신규투자 금액들을 감당할 만한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에 따라 주인의 위상은 달라지게 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2001년 기준으로 14.5%를 기록, 3위에 랭크돼 있다.

 만일 미국의 반도체 업체가 새주인이 된다면 미국은 하루아침에 D램부문 세계 1위 국가가 되고 독일이나 대만으로 간다면 삼성전자의 2001년 시장점유율 27%에 근접한 세계 2위로 부상하게 된다. 물론 하이닉스반도체가 없는 우리나라는 그간 10년간 쌓아온 D램 1위 국가의 명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반도체의 파급효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막 싹트려는 반도체 장비 및 재료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우자동차가 해외 자동차 회사에 매각돼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하청업체들이 학수고대한 반면 하이닉스반도체의 국내 하청업체(장비 및 재료업체)는 해외매각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공정 자체가 회사의 기밀이자 경쟁력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의문이 풀린다.

 하이닉스반도체를 매입한 외국회사는 공정상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신규투자분의 반도체 장비와 재료에 대해선 자국에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해오던 제품으로 바꾸기 마련이다. 이 결과 하이닉스반도체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던 국내 하청업체들은 졸지에 대규모 수요처를 잃게 돼 사지에 몰릴 것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밖에도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이닉스반도체의 입지마저 불안해질 경우 IT인력 부족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학계의 우려도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리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지속적이면서도 한수 앞을 내다본 과감한 투자가 곧 반도체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반도체 불황이 계속되는 현재상황에서 추가 투자를 결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지난 2년간 설비에 투자하지 못해 저하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체력은 또다른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같은 여러 문제점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열쇠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 가격이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든 반도체 경기가 언제 회복될지, 회복되더라도 어느 선까지 상승할지, 향후 호황기간이 얼마나 될지를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 하이닉스반도체의 미래는 여전히 안개속에 갇혀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제2의 중흥기를 맞기 위해서는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의 17%에 머물러 있는 메모리 산업 1위 국가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메모리 시장의 6배에 달하는 비메모리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해야지만 명실상부한 최강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난제가 너무 많다. 하이닉스반도체 처리문제는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파운드리 대표 기업인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합종연횡을 꾀하고 있지만 성사여부가 불투명해 새로운 문제점으로 부상했다.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윈윈전략을 감안한 합종연횡이 필수적이지만 M&A의 주체격인 동부그룹 자체가 자금문제에 직면하고 있어 M&A를 속단할 수 없는 처지다. 여기에 M&A의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미국의 TI가 기술이전 및 신규발주에 난색을 보이고 있고 동부그룹의 채권단이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해 동부와 아남의 합종연횡은 점입가경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45%를 점한 대만 TSMC, 28%인 대만 UMC, 11%인 싱가포르 차터드 등에 대항하려면 기술경쟁력 증대 못지 않게 합종연횡이 중요하지만 동부그룹이 넉넉지 못한 자금사정과 대형 수요처 발굴의 난항은 향후 M&A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이후 전개될 삼각(三脚)달리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제2중흥을 모색하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걸림돌이 눈에 띈다. 미래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이 반도체 산업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대국이 돼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도 없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 산업계, 학계, 금융계 모두가 힘을 모아야 걸림돌을 제거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야 한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