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별대담>`실리콘밸리 IT산업 현황과 미래` 주제

 ■배종태 KAIST 교수 & 커티스 칼슨 스탠퍼드연구소장■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기회의 땅입니다.” 미국 최대 민간 기술개발 및 컨설팅 기관인 스탠퍼드연구소(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를 이끌고 있는 커티스 칼슨 소장(57)은 실리콘밸리의 미래에 대해 낙관했다.

 지난 98년부터 SRI 사령탑을 맡고 있는 칼슨 소장은 최근 본지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KAIST 배종태 교수(테크노경영대학원·43)와 가진 특별대담에서 “최근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예전의 활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칼슨 소장은 이어 “지난 2000년 후반부터 실리콘밸리에서 IT업체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 자리에 IT를 접목한 생명기술(BT) 및 나노기술(NT) 관련 업체들이 속속 설립되고 있다”고 전했다.

 칼슨 소장은 “이들 중 상당수 업체들이 장기불황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킬러앱’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앞으로 2, 3년 후에 이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 하이테크 산업이 다시 한번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칼슨 소장은 고화질 텔레비전(HDTV) 등 15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술경영의 권위자. 그가 우리나라 벤처 양성소로 통하는 KAIST에서 오랫동안 기술혁신과 벤처경영 등을 강의하는 중견학자 배종태 교수와 ‘실리콘밸리 IT산업 현황 및 미래’를 주제로 한 특별대담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배종태 교수=먼저 전자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아 기술경영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SRI의 소장을 맡고 있는 커티스 칼슨 박사님과 특별대담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커티스 칼슨 소장=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정보기술(IT) 관련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특히 KAIST 졸업생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 교수=한국의 IT 산업은 미국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미국 IT 산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벤처 투자도 2000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실리콘밸리 IT 산업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칼슨 소장=최근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IT분야 투자가 격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동안 수요에 비해 IT 투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이른바 거품 때문이지요.

 그 반동으로 최근 실리콘밸리의 경기는 비정상적으로 위축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IT불황이 앞으로 1년에서 1년 반 정도 더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최근과 같은 불황기에도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열기가 조금도 식지않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배 교수=최악의 불황을 겪고있는 실리콘밸리에 창업이 활발하다는 사실은 언뜻 믿어지지 않습니다. 최근 설립되는 회사들의 주요 특징을 설명해주십시오.

 △칼슨 소장=순수한 IT분야의 창업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IT를 응용한 BT 및 NT 관련분야의 창업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미래의 ‘킬러앱’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컴퓨터 등 IT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는가 하면 DNA를 맞춤 제작하는 등 생명공학 관련회사들이 속속 출현해 생명의 신비를 푸는 연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배 교수=90년대 들어 약 10년 동안 전 세계를 달궜던 닷컴이 몰락하면서 최근 전 세계 IT관련 업계가 심각한 불황을 겪고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가 이를 통해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칼슨 소장=수익을 내는 것이 회사경영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경영학의 ‘ABC’이지만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은 그 동안 이를 잊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벤처캐피털 회사인 ‘메이필드 벤처스’의 파트너 ‘요간 달랄’씨는 최근 전 세계적인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이 확실한 시장과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업계획의 3박자를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배 교수=기업은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동시에 투자자들에게도 ‘수익’을 돌려줄 수 있는 사업을 해야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칼슨 소장=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또 SRI가 지난 50여년 동안 연구개발 및 창업의 제1원칙으로 실천했던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SRI가 직접 창업했거나 창업관련 컨설팅을 제공했던 기업들은 최근 실리콘밸리를 휩쓸고 있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회사경영이 건실한 편입니다.

 △배 교수=SRI는 전 세계적으로 산학 공동연구의 성공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SRI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칼슨 소장=SRI는 1946년 스탠퍼드대학이 연구성과를 민간에 이전해주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또 70년에는 비영리 법인으로 독립한 후 기술분야 외에도 정책과 경영분야의 컨설팅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 교수=그 후 SRI가 수많은 연구성과를 창출했고, 또 기술제공(라이선스) 등을 통해 기업으로 이전해서 사업화한 경험이 많습니다. SRI의 전반적인 성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칼슨 소장=최근 약 10년 동안에 SRI에서 개발한 기술로 20개 이상의 자회사를 설립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현재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우리가 기술과 자본 등을 모두 투자한 회사도 있지만 주로 기술제공 형식으로 5∼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특정 기술을 개발해달라고 요청하는 회사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맞춤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가 세계적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이들 중에는 물론 한국 기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 교수=SRI가 최근에 사업화에 성공한 모범사례를 소개해 주십시오.

 △칼슨 소장=먼저 SRI가 90년대에 고선명TV를 개발해 지난 97년 미국 최고 영화제 ‘에미상(기술부분)’을 받은 것부터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선명TV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속속 상용화하고 있어 우리에게 상당한 기술료 수입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 미국 최대 위성TV 회사 디렉TV에 디지털 비디오 시스템 관련 기술을 공급하는 제휴를 체결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도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로커스디스커버리는 컴퓨터를 이용해 신약개발 과정을 자동화한 회사로 최근 주가를 높이고 있습니다. 또 오키드바이오시스템스는 DNA를 맞춤 제작하는 회사로 각각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튜이티브서지컬도 환자의 복부에 수술 도구가 달린 3개의 소형 튜브를 삽입해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도구를 개발해 역시 의학분야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습니다.

 △배 교수=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벤처’가 키워드였는데 미국에서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키워드였습니다.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칼슨 소장=최근 출간되는 책에서 경영자를 마치 기적이라도 만드는 사람으로 묘사한 것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발상입니다.

 기업가는 제한된 자원을 잘 활용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창업할 때부터 충분한 자원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기업가는 첫 번째 목표를 훌륭하게 수행하면 다음 단계에 필요한 자원은 외부투자를 통해 조달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과학적인 경영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경영자라고 생각합니다.

 △배 교수=한국의 통신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입니다. 또 최근 삼성전자 등 한국 IT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IT 산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칼슨 소장=최근 전세계 시장에서 한국 IT산업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 IT산업 종사자들이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 한번 목표를 정하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에 이어 이동통신 등의 분야에서도 속속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배 교수=반면에 한국 IT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부족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충고의 말씀을 몇 마디 들려주십시오.

 △칼슨 소장=최근 한국 IT업체들과 교류하면서 느끼는 점은 아직 세계시장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앞으로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들간 수평적으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배 교수=좋은 지적입니다. 바쁜 데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칼슨 소장=아닙니다. 오히려 세계적인 IT전문지로 발전하고 있는 전자신문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지면을 통해서라도 한국의 IT 관계자들을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스탠퍼드연구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먼로파크시에 있는 스탠퍼드연구소(SRI)는 실리콘밸리 건설의 숨은 공로자다. 1946년 스탠퍼드대학 부설 연구소로 출발한 SRI는 1969년 미국 국방부의 의뢰로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을 개발한 것을 비롯해 컴퓨터 마우스(1964년), 세계 최초의 지능 로봇 샤키(1972년), 자기공명영상장치(MRI)등을 잇달아 개발해 기업체에 공급했다. SRI의 미래 예견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현재도 SRI에 근무하는 전설적인 연구원인 더글러스 엥글바트(75)가 1964년 이미 컴퓨터 마우스를 개발해 낸 것이다.

SRI는 70년 비영리 독립연구소로 분리해 나온 후 기술개발외에도 정책과 기술창업과 관련된 경영 컨설팅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종태 교수 약력■

1959년생(43세). 서울대 졸업(산업공학과), KAIST 박사(경영과학), 방콕 AIT대 초빙교수, KIST 연구원(경제연구부), 과학기술처 국가기획예산위 비서등을 거쳐 지난 92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커티스 칼슨 소장■

1945년생(57세). 위세스터 공대 졸업(물리학), 루티거스 대학 박사(전자공학), 사노프 창업 및 CEO, RCA 연구소등을 거쳐 1998년 SRI에 합류해 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