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감사철이 돌아오면서 ‘공적자금’이란 용어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우리 정부의 탁월한(?) ‘정책용어 작명술’에 놀라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공적자금이란 용어는 순수 창작품은 아니다. 이미 지난 95년부터 일본 대장성은 일반회계예산 등의 투입을 통한 금융권 부실채권 처리를 추진했다. 이때 일본내 각종 경제보고서나 정책자료에 등장하기 시작한 용어가 바로 공적자금이다. 이를 우리 정부는 IMF 이후 본격적으로 차용해 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세금’이나 ‘혈세’라는 용어로 썼다면 어땠을까. 지난해 이같은 기자의 질문에 재정경제부 한 관계자는 ‘아마 폭동이라도 일어났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대견해 하던 기억이 난다. 의도적 작명 때문인지 공적자금을 경제용어가 아닌 ‘정치용어’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다.
올들어 정부는 총 8회에 걸친 부동산 관련 각종 대책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중 ‘종합대책’이라며 발표한 것만 모두 네 차례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때마다 내놓는 땜질식 처방이 아니냐는 지적에 정부는 이번엔 ‘미세조정’이란 용어를 들어 항변한다. 부문별 미세한 조정을 통해 탄력적인 대처를 하다보니 이런저런 대책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일견 정부의 대응이 기민해 보이고, 섬세하게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작명에 대한 정부의 집착은 때때로 일선 업체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e실크로드’라는 IT산업 해외진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산업자원부가 지난 99년부터 시행중인 ‘실크로드21’과 정책명은 물론 사업내용면에서도 상당부분 중첩된다.
이번 국감에서도 국회 각 상임위와 피감 정부부처간 치열한 설전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갖은 논리와 용어를 총동원해가며 자신의 공과를 따질 것이다. 예의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들도 국감장 속기록에 속속 등장할 것이다.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