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한 방송과 통신의 융합>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음성·데이터·동영상을 3대 축으로 한 멀티미디어 구현은 통신이나 방송 모두에 있어 하나의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방송이나 통신모두 멀티미디어를 외쳤지만 제한적일 뿐이었다.
최근 멀티미디어시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는 통신과 방송의 기술상 개념적인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영역을 달리했던 통신과 방송=과거 통신은 협대역 네트워크의 특성상 양방향성을 갖는 포인트 투 포인트 캐스팅 서비스로 자리잡아왔다. 방송은 대용량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광대역 네트워크를 가졌지만 말 그대로 방송(broadcating) 서비스에 그쳤다.
그래서 통신은 전화, 방송은 동영상 프로그램으로 특화돼 왔다. 통신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있어 음성전화였을 뿐이고 전화모뎀을 통해 64Kbps의 데이터를 전송하는 정도였다. 통신은 교환기를 통해 특정가입자와 특정가입자를 연결해줬고 그내용도 정지영상이 조금 가미됐을 뿐 진짜로는 전화용도였다. 방송은 통신보다 더욱 제한적이었다. 방송은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동영상 프로그램이라는 데이터를 전송했고 TV를 통해 구현됐다. 양방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방송이었다.
◇가까워지기 시작한 방송과 통신=방송과 통신의 융합 전초전은 지난 90년대말부터 화려하게 개막한 초고속 인터넷의 대중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 전화선(PSTN)에 기반을 두었던 통신은 최대 8Mbps 전송이 가능해진다는 ADSL기술과 궁합이 맞아떨어지면서 초고속 인터넷 붐을 일으켰다. KT 등 통신사업자에 의해 상품화한 ADSL은 가입자까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데이터 전송용량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1∼2Mbps는 무난했다. 음성네트워크가 동영상 전송도 가능해진 것이었다. 통신의 역사가 달라지는 것과 동시에 방송의 역사도 바뀌기 시작했다.
CATV로 자리잡았던 케이블TV 역시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98년 7월 ADSL보다 빨리 상용화한 케이블모뎀형 초고속 인터넷은 방송에 있어 통신 진출의 신호탄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케이블TV는 특정가입자를 대상으로 동영상 프로그램만 전송하는 단방향 네트워크였다.
방송과 통신이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직접 격돌하게 된 것이다. 900만에 육박하는 우리의 초고속 인터넷가입자 중 ADSL비율이 조금 앞서고 있으나 ADSL이 거대통신사업자가 상용화한 기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케이블TV망의 선전은 놀라울 따름이다.
◇디지털에 따라 본격적인 융합시대=방송·통신의 융합역사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방송·통신융합의 핵심은 통신의 광대역 네트워크와 방송의 양방향 광대역 네트워크다. 통신은 VDSL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방송은 디지털 케이블TV에서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해말 디지털화한 지상파까지도 데이터방송 등 방송·통신 융합역사에 가세했다. 일부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검토중인 DAB서비스 역시 방송·통신융합의 상징적인 사례다. 통신사업자들은 가입자당 52Mbps를 전송하는 VDSL를 기반으로 음성·데이터·동영상이 거듭나는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VDSL은 HDTV급 프로그램 전송 서비스는 물론이고 VOD 등 다양한 동영상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점대점 음성통신이 특성이었던 통신망이 방송영역까지 넘나들게 된 것이다.
케이블TV는 디지털로 중무장하면서 완벽한 통신네트워크의 특성을 갖춰나가고 있다. 통신만의 세계였던 전화까지도 VoIP기술과 양방향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고 광대역 네트워크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수백개의 방송채널, t커머스, 원격자동화서비스, VOD 등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케이블TV 사업자인 DMC사업자가 방송사업자인지, 통신사업자인지 논란이 불거질 것은 불문가지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국내 IT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다.
특히 새로운 세계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시대다. 방송·통신 융합시대에서 개화하는 엔터테인먼트콘텐츠시대의 파급효과는 우리 IT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다. 장비·소프트웨어·기업환경 등 모든 환경이 변화할 것이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
<핫이슈> 규제기구 논란
방송통신위원회로 가나. 방송·통신의 융합이슈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 법·제도적 환경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지금까지 통신은 통신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성장해온 데다 방송의 경우 규제·행정과 산업정책 및 지원기능이 분리돼 있다.
방송·통신의 파급력을 감안해 주무부처간 이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포문을 연 것은 방송계다.
강대인 방송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일성으로 방송·통신융합시대에 대비한 규제기구의 통합을 공식 제안했다. 이에 통신을 관장한 정보통신부 역시 체계적인 대응을 서두르고 있고 프로그램 산업에 대한 정책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관광부 역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전개하고 있는 게 방송위원회다. 방송위는 새로운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의 출현뿐만 아니라 기존 방송의 디지털화 및 망의 복합화에 따른 융합환경에 적극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방송위 소관의 현행 방송법과 정통부 소관의 전파법 및 전기통신사업법 등 관련법률정비와 함께 통합적 규제모델을 만들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방송위원회는 지난 7월부터 방송통신법제정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방송통신법제정비위원회는 산하 분과위를 통해 현행 방송과 통신에 대한 개별 입법체계를 정비해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통합법규의 기본체계를 마련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와함께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직무, 정부조직 개편과의 연관성, 통합일정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정통부는 지난 6월 통신서비스 및 사업자 분류체계 개정안에서 방송사업자들의 전기통신역무시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취득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방송통신 융합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다면 현실여건상 케이블사업자들이 부가서비스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기간통신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문제로 번진다.
정통부는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방송위원회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 방송계로부터 반발을 사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 정통부내에서는 방송통신위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도 엿보인다. 정통부 내부에서는 최근 통신방송 규제기구를 통합하고 정책과 규제기능을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정통부는 통신방송 정책 수립과 사전 규제는 정보통신부로 일원화하고 통신방송 사후 규제와 시장 감시는 통신방송위원회를 설립해 일원화하자는 자기중심적인 안을 내세우고 있다.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방송과 통신의 정책·행정·규제기능 논의 문제는 방송위와 정통부 외에도 문화관광부까지 연관돼있어 복잡한 이해 상충 해결이 우선이다.
<조시룡기자>
<외국 정책 사례>
최근 방송과 통신의 융합추세에 따라 서구 선진국도 이의 통합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은 규제기구의 일원화를 통해 방송·통신의 융합이슈를 소화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통합돼 있는 일본을 비롯, 규제위원회가 통합돼 있는 미국과 캐나다 등이 대표적인 국가이다. 일본은 지난 96년 내각으로부터 독립한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 방송 규제기관을 우정성과 분리, 운영하려 했으나 우정성 관료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2001년부터 일본은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하지 않는 대신 우정성의 정부기관을 개편하는 방향으로 방송·통신의 융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통신정책국·전기통신국·방송행정국의 정책 3국으로 구성된 우정성을 정보통신정책국과 종합통신기반국의 총무성으로 개편하면서 방송정책과·기술과·지상파방송과·위성방송과·지역방송과를 정보통신정책국 산하에 신설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방송과 통신의 업무를 따로 분리해 시행해 온 우정성을 폐지하되 방송통신행정체계를 포함해 기존의 우정성 체제와 업무를 그대로 총무성으로 이관, 방송·통신 정책을 총무성 정보통신정책국에서 관할하게 됐다. 미국은 1934년 설치한 연방통신위원회(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를 독립규제위원회로 방송·통신에 관한 기본정책 수립과 집행, 면허행정 등의 업무를 수행해오고 있다. 지난 96년 통신법을 제정, 통신사업자와 케이블TV사업자간 교차 서비스를 장려하는 등 정책과 규제면에서 엄격히 구분됐던 방송·통신 업계의 통합을 추진해왔다. FCC는 99년 △방송통신 융합환경에서 자율경쟁 원칙 표방 △디지털시대 적합한 정책기구 형성 △모든 방송·통신시장에서의 자율경쟁 장려 △커뮤니케이션 혁명으로 인한 이익 향유 기회 장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주파수 관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FCC’라는 계획을 발표, 이후 방송·통신 융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중이다. 캐나다도 방송통신위원회법을 통해 CRTC(Canadian Radio-Television and Commission)를 설치, 방송과 통신부문 규제감독을 총괄하고 있다.
CRTC는 현재 △캐나다 방송·통신부문 규제 감독 △방송국 면허 부여 △규칙제정권 △프로그램 기준 및 방송시간 할당, 정치방송 시간배정 △광고성격과 광고시간 할당 △방송 허가료 결정 △벌과금 부과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밖에 이탈리아도 미국의 FCC를 모델로 지난 97년 방송통신법에 의거, ‘방송통신감독위원회(Autorita)’를 설치, 방송허가 및 주파수 할당계획 수립 등 방송과 통신부문 규제감독을 총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들은 방송·통신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정부기관 및 규제기구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방송·통신의 융합추세에 유연히 대처하고 있으며 방송·통신 산업을 관장하는 규제기구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이들은 방송·통신에 대한 규제를 함께 담당함으로써 일관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의회에 대한 책임을 지닌 독립규제위원회 및 정부기관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방송·통신 산업의 발전을 뒤받침하고 있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