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신인류가 달린다

컴퓨터 대중화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을 하나 꼽으라면 애플마우스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통해 컴퓨터가 쉽고 재미있는 도구라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심벌이기 때문이다. 애플마우스는 미국 디자인 업체 IDEO사에 의해 설계됐다.

 IDEO사의 디자인 포트폴리오에는 애플마우스뿐만 아니라 해의 방향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해변용 의자, 모든 장비를 하나의 도구속에 집어넣은 올인원 스타일의 낚싯대 장난감 등 재미있고 신기한 물건들이 넘쳐난다.

 지난 78년 4명의 직원으로 창업해 지금은 300명의 인재를 거느리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P&G, 삼성 등 세계 일류기업을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는 IDEO. 많은 경영 컨설턴트와 기업들은 IDEO의 성공전략을 분석, 벤치마킹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노베이션의 교과서로도 불리는 미국 IDEO사의 성공요인을 무엇일까.

 IDEO사의 CEO인 톰 켈리는 최근 펴낸 유쾌한 이노베이션이라는 책에서 고루하지 않고 창조적이면서, 상상과 모험을 즐기되 협동을 중요시하는 직원들이 IDEO사 성장의 핵이라고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직원들 모두가 마치 놀이를 하듯 일을 즐기며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언제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보완해나가는 협업문화가 IDEO를 최고의 디자인 기업으로 만든 요인이라는 것이다.

 IDEO사의 사례는 모든 변화와 발전의 핵심은 역시 사람의 힘이라는 고전적인 진리를 깨우쳐 준다. 비록 창조와 파격이 지배하는 디자인 업계의 특수성이 작용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변화가 경영의 변화, 기업 문화의 변화, 나아가 산업의 변화를 이루는 것은 IT분야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 IT산업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30년전 IBM 메인프레임 중심의 호스트 컴퓨팅은 80년대 말 유닉스 중심의 클라이언트 서버 컴퓨팅으로, 이는 다시 인터넷 컴퓨팅으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 코볼과 C언어는 자바와 비주얼베이식에 프로그래밍 언어의 왕좌를 내주었다. 반도체와 네트워크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고 통신기술은 이제 무선 휴대폰에서 동영상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시대로 이전하고 있다.

 이렇듯 IT산업이 태동한 이래 30년 동안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2002년 현재 시점에서는 향후 30년의 IT비전을 고민해야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향후 10년 동안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것처럼 IT분야 역시 이러한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도체, 정보통신, SW, 문화 콘텐츠 등 현재 국내 IT산업을 이끌고 있는 분야가 과연 미래에도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효자산업이 될 것인지, 그렇다면 또 각각의 분야에는 어떤 과제가 던져져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IDEO사의 사례로 돌아가 이 시점에서 이러한 과제를 풀 수 있는 IT 주체세력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 IT산업은 미래 비전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는 주체들이 마련돼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잠시 동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IT경기 침체나 미래 전망의 불투명함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IT신인류를 내세우고자 한다. IT분야는 이제 과감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다. 30년전 IT산업을 이끌었던 주역들은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IT분야 곳곳에 미래의 산업을 이끌 신인류가 자라나고 있다. 이는 비단 나이와 연륜의 관점만이 아니다. 구태의연하고 관습적인 모습을 떨치고 창조적·개방적이고 네트워크화된 힘으로 IT산업을 밝히는 새로운 IT맨파워를 뜻한다.

 20대 CEO, 여가를 즐길 줄 아는 프로그래머, 하나의 직업에 구애받지 않는 멀티플레이어, 누구보다 빨리 신 IT문화를 체험하는 어얼리어댑터, 품질 관리자보다 더 꼼꼼하게 IT품질을 살피는 마니아, 자신의 몸값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고수익 연봉자, 브레인스토밍의 즐거움을 아는 팀원, 다른 분야에서 과감히 IT로 이적한 모험가 등 IT신인류의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많은 요소 가운데 IT신인류를 관통하는 기본철학은 변화에 있다. 머물러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내는 것, 그래서 변화하는 물결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의 힘으로 IT시장은 더욱 풍부해지고, IT토양은 더욱 기름져 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무척 힘든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상식적이지 않은 사고와 행동으로 주위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한다는 점 때문에 남모를 시련과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무수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당당하게 전진함으로써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토비스의 김효중씨는 빼놓을 수 없는 IT신인류다. 한때 프로축구 선수였던 김씨는 2년전 IT업체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프로축구 선수가 맹렬 IT영업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그는 해냈고 이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야간에는 명지대 정보통신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몇년 후에는 최고의 IT영업맨으로 우뚝 선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컴포넌트 IT시스템 개발 전문업체인 넥스젠테크놀로지의 이덕순 사장은 나이로만 보면 전형적인 구세대에 속한다. 36년에 태어났으니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 그러나 이 사장을 구세대로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젊은 사람보다 더 젊은 감각을 지닌, 언제나 변화하고 노력하는 신세대 CEO에 가깝다.

 콘트롤데이타, 삼보컴퓨터 SW사업본부장, 삼보소프트웨어 사장 등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물러나기보다는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벤처를 창업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패기가 아름답기까지하다. 유창한 영어실력에다 지칠 줄 모르는 정열, 끊임없이 신사업을 구상하는 이 사장에게 IT신인류라는 이름은 더 없이 잘 어울린다.

 IT신인류의 두번째 속성은 공유다.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은 낡은 방식이다. 치열한 자기 고민이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조차도 네트워크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프로그램 개발에서 협업 시스템이 부각되는 것이나 기업이 수직적인 지휘체계보다는 수평적인 팀제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노리는 것도 공유의 파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서앤더슨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경영자의 70% 이상이 조직 내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76%가 브레인스토밍의 실시 횟수가 한달에 한번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주간 회의, 전략 회의는 많지만 일상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뼈대에 피와 살을 붙이는 브레인스토밍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혁신기업 IDEO사는 거의 매일 브레인스토밍을 실시하고 있다. 아니 실시한다기보다는 습관화돼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국내 DVD 사용자들의 모임인 DVD프라임은 공유를 실천하는 IT신인류들의 집합소 가운데 하나다. DVD프라임은 각종 DVD하드웨어와 타이틀 정보를 서로 나누는 것은 물론 어려운 상황이나 부당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각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 커뮤니티의 모든 활동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며 불량 DVD타이틀 리콜 등 대다수가 공유한 내용에 대해서는 실천으로 옮김으로써 주변인으로 머물기를 거부한다.

 IT산업에 젊은 피의 수혈은 매우 중요하다. 이전 세대들이 지난 30년 IT를 이끌고 왔다면 이제 새로운 세대가 앞으로의 30년을 이끌고 가야 한다. 이들은 IT산업을 살지우는 자양분이자, 동시에 새로운 IT산업의 싹을 틔우는 창조자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