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신인류가 달린다-IT신인류

지난 6월. 전국은 붉은색 물결로 넘실거렸다.

 w(월드컵)세대 또는 r(붉은색)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인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들은 거리에서 몸을 태극기로 감싸고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손을 마주잡고 하나가 돼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대표적인 오프라인 장소인 거리로 나와 이처럼 똘똘 뭉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온라인이라는 사이버 공간이 하나의 요인으로 파악된다. 그동안 새롭게 다가온 인터넷 가상공간에 빠져나온 이들은 이곳이 폐쇄적이고 개인주의적 공간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하고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월드컵이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이버 가상공간의 진정한 실체를 인식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적절히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정보기술(IT)신인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T신인류는 명백히 인터넷을 처음 접하고 이를 생활의 모두로 받아들였던 n세대와는 다르다. 하지만 최소한 n세대와 함께 인터넷을 포함한 IT문명을 충분히 접해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IT신인류는 연령적으로 기존 세대와 차이를 보인다. 기존 10대 위주의 X세대, n세대 그리고 30대의 386세대와 비교해서 연령의 폭이 넓다. 먼저 IT문명을 최대한 영유하면서, 가상공간에서 느낄 수 없는 개방성과 공동체 의식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온라인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폐쇄적이고 개인적인 것보다는 개방적이고 투명한, 그리고 공동체적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모든 것을 찾는 것이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그들의 생활공간으로 인식한다.

 IT신인류는 또한 자유롭게 표현하고 즐기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거리응원에 나선 사람들처럼 어떤 의무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그리고 즐기기 위해서 뛰쳐나왔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들은 n세대들과 함께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을 배웠으며 또한 이를 오프라인상에서도 어떻게 배출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나름대로의 개성표현으로 연결된다. 20세기 말 미디어와 통신의 발달로 개성상실이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지만 IT신인류는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가운데 그들만의 개성을 찾고 표출할 줄 안다.

 IT신인류의 여가관도 기존 세대들과는 큰 차별성을 띤다. 기존 386세대의 경우 일에만 얽매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소속된 직장에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며, 여가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서 찾으려 했다. 또 인터넷과 함께 등장한 n세대의 경우는 여가를 위해 일을 했다. 어떤 구속도 좋아하지 않는 n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등장하는 새로운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마지못해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IT신인류는 다르다. 일과 여과를 하나로 볼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보려 한다. 그래서 비록 40대의 나이에도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옮겨가는 것이다.

 IT신인류는 정보에 대한 분별력이 뛰어나다. n세대가 새로운 문명인 인터넷이라는 정보창고에서 모든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면 IT신인류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서 찾아 활용한다. 또한 n세대들이 인터넷상에서 목적지 없는 서핑을 해왔다면 IT신인류는 자신이 갈 곳을 정해놓고 항해한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 접속한 순간 자신이 찾을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 전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로 이어진다. 또한 목표의식을 갖고 자신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n세대가 단순한 관심속에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IT신인류는 자신이 참여할 필요성이 있는 커뮤니티를 찾아서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을 이유로 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하지 않는다. 처음 인터넷을 접한 세대는 익명성이라는 특혜(?)를 누리며 사이버 공간에서 비판을 일삼아 왔다. 하지만 IT신인류는 익명성이 하나의 특혜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프라인에서 자신을 표현하듯이 온라인에서 충분한 논리적 바탕을 두고 자신의 주장을 밝힌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지난 월드컵에서도 드러났다. 한국이 4강전에서 독일에게 패했을 때와 준결승전에서 터키에게 졌을 때 모두 한국이 승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박수로 양팀 선수들을, 그리고 자신들을 격려했다. 과거 패배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비판을 일삼았던 부정적인 시각과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기고: IT와 퓨전시대 - 김종길 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 ■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존재방식, 인간들간의 관계 및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총아인 인터넷은 인간의 정체성 인식에서부터 상호관계,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총체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이버 스페이스, 온라인 공동체, 가상현실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사회공간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오프라인 공간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문화와 ‘신인류’가 출현하고 있다.

 정보사회의 향배와 관련해 흥미롭고도 시사적인 것은 이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연령층이 현실세계에서 부와 권력,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가 아니라 이것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인터넷 혁명의 파고가 단지 청소년층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겠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해 생활영역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이버 공간은 일차적으로 청소년을 중심으로 확대, 발전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매체의 특성에 부합하며 구체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동전화·개인휴대단말기(PDA) 등 각종 이동통신은 인터넷 차원에 머물던 사이버 공간의 의미와 외연을 무한대로 확장했으며, 더 나아가 n세대, m세대, 디지털 노마드족, 엄지족 등 다양한 이름과 애칭으로 불리는 새로운 세대를 배태했다. n세대는 인터넷에 심취한 네트워크 세대를 말하고, m세대와 디지털 노마드족은 이동전화와 모바일을 갖추고 마치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엄지족은 엄지손가락으로 문자 메시지를 능란하게 보내는 부류를 지칭한다.

 하지만 n세대 내지 m세대를 특징짓는 적극성과 참여의 열정 뒤에는 지나친 개인주의화, 인터넷 중독, 불건전 정보의 범람, 정체성 혼란, 익명성에 따른 인간성 상실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도사리고 있다. 요즈음 들어 부쩍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킹에서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공허감을 해결하고 스킨십과 인간적 접촉을 갈망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각도에서 읽히고 이해될 수 있다.

 최근 막을 내린 한일 공동 월드컵은 우리 청소년들의 이같은 갈망이 거침없이 표출되고 해소될 수 있었던 뜻밖의 장이었다. 월드컵 기간중 우리 청소년들이 보여준 자화상은 더이상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창백한 n세대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태극기 패션으로부터 페이스 페인팅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말하고 감성으로 표현하는 파격적인 문화현상을 창출하고 유행시켰다. 15∼25세가 주축을 이룬 새로운 세대는 거리응원을 통해 기성세대가 간과해온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축제문화의 흥겨움을 동시에 구현했다. 이들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담론 방향을 일거에 n세대에서 r세대, m세대에서 w세대로 바꿔놓았다.

 r세대 혹은 w세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겨온 ‘개발연대세대’와는 다르며, 민주화 투쟁을 경험하면서 지나치게 엄숙하고 형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386세대’와도 구분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단순히 n세대이거나 m세대인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n세대나 m세대는 사이버 공간에 매몰된 채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며, 국가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r세대는 인터넷으로 네트워크화되어 있으면서도 최첨단 멀티미디어인 대형 전광판과 개방된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서 대규모 단체응원을 펼친 일종의 ‘퓨전 세대’였다. 또한 이들은 서로 충돌하는 문화요소들, 다양한 가치관 사이의 조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체현한 ‘패러독스 세대’였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을 주요 활동무대로 하면서도 사이버 공간의 특성인 개인주의화되고 파편화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의식을 나타냈으며, 기성세대와도 하나가 되어 화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이 보여준 폭발적인 응집력과 발전 잠재력은 세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청소년의 무한한 가능성을 재인식할 수 있게 했다. r세대의 이같은 긍정적 에너지를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담보로 하는 양질의 통합적 에너지로 전환시키고 확대 재생산하는 과제는 이제 단순히 청소년의 몫이 아니라 기성세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