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아마 격차 줄이는 온라인 창작 ■
-`사이버 시인` 박지웅씨 & `의사 작곡가` 최철기씨
지난해 7월 개봉해 33일 만에 전국 4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대박을 터뜨렸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기억하는가.
순진남 차태현과 엽기녀 전지현의 리얼연기가 흥행에 한 몫을 했지만 온라인에서 인기를 검증받은 김호식씨(28)의 원작이 주요한 성공요인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견우74’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김호식씨는 지난 99년 나우누리 게시판에 ‘실시간 사랑레포트’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의 글은 여타 PC통신 게시판으로 옮겨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데 힘입어 2000년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사실 온라인의 힘이 아니었다면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는 아예 탄생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제작사인 신씨네는 온라인에서 충분히 검증된 인기를 믿고 영화화에 나섰고 기대에 부응하듯 개봉 당일까지 팔려나간 예매 스코어가 무려 8만1000여장에 이르면서 한국 최다관객신기록을 세운 ‘친구’의 7만7000장을 뛰어넘기도 했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에 써달라며 영화사를 전전하던 작가지망생들에게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은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변화를 뜻했다.
지난 98년 영화화돼 온라인 창작의 가능성을 보여 준 ‘퇴마록’에 이어 ‘엽기적인 그녀’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인터넷을 통한 창작활동은 급격히 늘어났고 지금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나이나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인터넷에서 자신만의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인터넷 문학사이트인 작가네트(http://zaca.net)가 한국문인협회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사이버 시인공모전 ‘디지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통해 등단한 박지웅씨(33).
어려서부터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학창시절의 문학활동은 쉽지 않았고 지난 90년 부산 모 대학 일본어학과를 중퇴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95년도, PC통신 게시판을 통한 문학활동이 한 때 유행하면서 잠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온라인의 특성에 지쳐 문학활동을 접게 된 그가 30대의 나이에 작가네트를 알게 된 것은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회원들 앞에 자신의 시를 선보이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으면서 가슴 한 구석에 있던 시에 대한 열정은 다시금 솟아올랐다.
무엇보다 온라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작가네트에서의 활동이 오프라인 문학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의 시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월인천강지곡’에서 ‘다시는 희망과 동침하지 않는다’와 ‘침략’ 두 편의 시로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그는 드디어 주류 문학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으며 올 해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의 늦깎이 신입생이 되는 겹경사까지 맞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었지만 온라인의 작품들이 오프라인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기쁘더군요.”
그의 말처럼 온라인에서 시작한 작가가 오프라인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은 아직은 보수적인 문학계에서 큰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문인협회의 정회원 자격으로 어디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온라인에 중심을 두고 활동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직 실력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온라인의 숨은 실력자들에게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도 하고요.”
그는 온라인 문학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작품에 대한 반응이 실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시간 반응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그때그때 돌아볼 수 있지만 그 반응에 맛을 들이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재미로 올리게 되죠. 그 점만 주의하면 온라인 문학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봅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할 때 쯤이면 온라인 문학에 대한 사회분위기가 완전히 성숙될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북아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올리고 있다.
수원의료원 비뇨기과에서 보건의료소장을 맡고 있는 최철기씨(31).
지난 2000년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공중보건의사 활동으로 군복무를 대신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월, 음악커뮤니티 사이트인 작곡넷(http://www.jakgok.net)을 알고부터 머리 속으로만 그려오던 음악가로서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어린시절 습작을 교회에서 발표하는 등 남다른 끼를 보였던 그의 작품들은 작곡넷에서 회원들의 애정어린 조언과 합쳐지면서 진정한 음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공중보건의사 1년차 때 전남 고흥에서 복무했던 그는 음악활동에 좀 더 열중하기 위해 2년차 때는 경기도 김포로 복무지를 옮겼다.
작곡넷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곡을 등록시킬 정도로 실력이 향상된 그는 올 4월, 작곡넷을 운영하는 문화기획사 ‘헤븐’이 기획한 가스펠 음반 ‘컴페션’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작곡가로서의 레벨을 한 단계 올리게 된다.
“인터넷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격차를 줄여줍니다”는 한마디로 그는 인터넷의 위력을 표현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아무 조건없이 공유하기 때문에 음악 초보자가 일정수준에 오르는 시간을 대폭 줄여준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는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창작의욕도 샘솟는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음악사이트가 장수하려면 인적 커뮤니티 형성이 중요합니다. 서로의 생각 공유없이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만 빼가는 모임은 오래가지 못 하죠.”
그는 오프라인에서의 끈끈함이 가미될 때 비로소 온라인의 위력이 발휘된다고 강조했다.
1, 2년차때와 달리 보건의료소장을 맡고 있는 지금은 작곡에 쏟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아쉬워하는 그는 내년 4월에 복무를 마친 후 서울·경기지역에 병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침체기에 접어든 음반시장에서 대중음악가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본업이 음악가는 아니기 때문에 부담없이 활동하면서 꿈을 계속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그는 잠시 잊었던 자신의 꿈을 다시 일깨워 준 인터넷에 감사하며 그가 초보자일 때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자신도 남들에게 음악적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원조`인터넷 가수 조PD ■
“앞으로도 인터넷은 무한한 기회의 장이 될 것입니다.”
지난 98년, 나우누리의 ‘신인가수 스타 만들기’ 코너에 자작곡 MP3 파일을 올려 독특한 스타일과 파격적인 노래말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후 실제 가수로 데뷔, 인터넷 가수의 원조로 꼽히는 조PD(본명 조중훈·27).
획일화된 국내 음반시장 구조를 거부, 데뷔 초부터 PR비 한 푼 들이지 않고 활동해 온 그에게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그의 음악이 세상에 알려진 곳도 PC통신과 인터넷이었고 TV출연을 거부하다가 처음 얼굴을 드러낸 곳도 인터넷방송이었다. 팬들과의 교류도 주로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난해 퓨쳐플로우(http://www.futureflow.co.kr)라는 음악벤처회사 설립으로 CEO로서의 새출발을 선언한 후 발매한 4집에서는 ‘디지털 앨범’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구매한 CD에 담긴 비밀키를 입력하면 퓨쳐플로우 웹사이트에서 MP3로 된 4집 앨범 전곡과 미발표 곡, 동영상 등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시도였다.
“음반 불법복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지만 MP3 양성화라는 대안을 제시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또 올 해 초 삼성SDS 멀티캠퍼스에서 개설한 ‘실무자를 위한 웹마케터 과정’을 들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마케팅 기획 능력을 키우는 등 인터넷을 활용하는 시대조류르에 앞서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인터넷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사랑하는 그이기에 최근 이슈화됐던 소리바다 폐쇄에 대한 생각은 단호하다.
“서비스 폐쇄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반짝 인기를 끄는 곡들만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소리바다와 같은 서비스야말로 꼭 필요하죠. 물론 창작자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를 공짜로 훔쳐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건전한 방향으로의 MP3 활성화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4집 앨범 중 돈만 쫓는 가요계의 현실을 비판한 “shame on you”라는 곡에서는 ‘냅스터, 소리바다가 내 일터’ ‘소리바다에서 다운받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짜 음악 찾아’라는 가사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 음악 유통을 위한 저작권 보호 기술은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효과적인 활용방안만 등장한다면 대세는 급격히 기울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모바일 환경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시대에는 디지털 음악에 대한 관리가 한층 쉬워지면서 디지털 콘텐츠 제공망을 장악하는 쪽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일부 통신업체는 모바일 환경에서의 음악 콘텐츠 사업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저 역시 관련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조PD가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던지는 새로운 승부수가 무엇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